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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11. 2020

[일본여행] 이즈반도(伊豆半島)와 후지산(富士山) E3

(2017.10.24) 후지산(富士山)과 하코네(箱根)

여행 3일째, 오늘은 후지산(富士山)과 하코네(箱根) 일대를 돌아볼 예정이다. 


먼저 하코네 쪽으로 갔다. 하코네는 이전에 거의 10번쯤 다녀왔다. 1994-95년 1년간 동경의 종합연구개발기구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 동경의 서쪽에 있는 코마에 시(狛江市)에서 살았다. 코마에 시는 동경도(東京都)에 속해 있는 작은 시로서, 신주쿠 역에서 오다큐선(小田急線) 기차를 타고 30분가량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코마에 시에서 타마가와(多摩川)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와사키시(川崎市)이다. 


동경에서 기차로 하코네로 가려면 신주쿠역에서 오다큐선을 이용하여야 한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신주쿠에서 하코네로 가는 도중에 있는 셈이어서, 하코네로 가기가 아주 편하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또 한국에서 출장을 오는 사람이 있으면 관광은 대부분 하코네로 데리고 갔다. 그래서 그 당시 하코네에 그렇게  자주 갔던 것이다. 당시의 하코네 여행은 대부분 동경 방면에서 출발하는 코스였기 때문에 교통편은 오다큐선(小田急線)으로 오다와라(小田原)까지 온 후, 거기서 등산열차, 케이블카, 삭도(索道) 등 여러 교통편을 이용하여, 마지막으로는 유람선으로 아시 호수(芦の湖)를 건너는 아주 표준적인 하코네 여행코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타미에서 하코네로 가니까 과거의 하코네 여행과는 반대편에서 접근하는 코스이다. 하코네의 <아시 호수> 주위에는 하코네 신사(箱根神社)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있다. 하코네 신사를 잠시 구경하고, 하코네 관소(箱根関所)로 갔다. 하코네 관소는 여러 사연이 많은 장소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河家康)가 정권을 잡고 지금의 동경인 에도(江戸)에 막부를 설치한 이후 도쿠가와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반란, 즉 역모(逆謀)의 방지였다. 과거의 권력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힘으로 권력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교훈 삼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제도를 통해 반란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권력을 지키려고 하였다.


도요토미(豊臣) 집안을 멸망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의 영주, 즉 다이묘(大名)들에게 13개 조의 법령을 반포하였는데 이를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라 한다. 그 주된 내용은 영주들에게 백성을 잘 다스릴 규범과 함께 무가(武家), 즉 영주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규정해 놓았다. 다이묘(大名) 간의 혼인에 대한 허가제나 영내로 도망친 죄인들을 숨기는 것, 성을 건설하거나 수리하는데 허가를 받을 것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영주들의 반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참근 교대(参勤交代)라 하여 다이묘들에게 1년은 에도에 그리고 다음 1년은 자신의 영지로 이렇게 번갈아가며 지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이묘의 처를 비롯한 식솔들은 에도에서 살도록 하였다. 이것도 역시 반란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도에 거주하는 다이묘들의 식솔들은 일종의 인질의 역할을 하여 반란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참근 교대에는 수 백 명에서 수 천 명에 이르는 사무라이 및 사용인들이 동원되었으므로, 참근에는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었다. 이 역시 다이묘들의 경제적 기반이 튼튼해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반란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코네 관소

그리고 지방에서 에도로, 또 에도에서 지방으로 사람이나 물자가 이동하는 것을 철저히 검문하였다. 이 역시 주된 목적은 반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에도 주위에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검문하는 관청을 관소(關所)라 하였다. 하코네 관소는 동경의 서쪽 지방, 그러니까 주로 관서지방과 에도를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검문하는 곳으로서, 에도 주위에 있는 관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하코네 관소를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사이로, 밤에는 통행이 금지되었다. 관소의 검문은 “입총출녀”(入鉄炮出女, 이리뎁포 데온나)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의미는 에도로 뎁포, 즉 총을 반입하는 것과 에도로부터 여자가 나가는 것이 주된 검문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에도로 무기를 반입하거나 여자가 에도로부터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막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 없이 이동했다가는 모반의 죄가 있다 하여 엄중히 다스렸다. 


에도로 무기를 반입하는 것은 치안의 유지나 모반의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하겠지만, 여자가 나가는 것을 왜 엄격히 검문하였을까? 여기서 말하는 여자란 다이묘의 처 등 식솔들이다. 에도에 거주하는 다이묘의 식솔들은 인질의 기능을 하는데, 허가 없이 여자가 나간다는 것은 모반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 철포(鐵砲)를 허가 없이 에도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는데, 철포가 무엇일까? 철포는 일본어로 뎁뽀라고 읽는데, 조총(鳥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함부로 설치는 사람을 무뎁뽀라 하는데 이는 한자 무철포(無鐵砲)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뎁뽀란 전쟁터에 나가는데 뎁뽀, 즉 총도 들고 가지 않는 무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옛날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들고 온 화승총(火繩銃)을 조총(鳥銃)이라 했는데, 왜 새 조(鳥) 자를 써서 조총이라 했을까? 예전에 “불멸의 이순신” 등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하여 “조총”이라 이름 붙였다고 나오는데, 이는 틀렸다. 실제로 화승총에 왜 “조총”이란 이름을 붙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화승총은 영어로는 머스킷(Musket)이라 하는데, 이는 프랑스어로 매의 일종인 “새매”를 뜻한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국이 “조총”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머스킷 총은 그 모양이 새의 부리와 같이 생겨 조총이란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머스킷 총은 새 사냥에 자주 이용되었기 때문에 조총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조총부대

실제로 조총으로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조총은 이전의 중국이나 조선에서 만든 총통에 비해서는 명중률이 월등히 좋았다고는 하지만, 명중률이 형편없어 기껏해야 유효 사거리는 20미터 정도에 불과하였다. 총기 기술이 월등히 발달한 유럽에서 조차, 임진왜란보다 100년 뒤에 발발한 <30년 전쟁>에서 사용된 머스킷 총이 사람을 맞출 수 있는 유효사거리가 겨우 25미터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왜병들이 가진 그 시대의 조총으로 나는 새를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하코네 관소에는 검문을 담당하던 관리들의 거처, 통행자의 숙박시설 등 여러 시설이 있어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시 호수(芦の湖)를 옆에 끼고 후지산 방향으로 달렸다. 아시 호수는 둘레가 약 20킬로미터가 넘는 큰 호수이다. 물 깊이도 가장 깊은 곳이 45미터 정도로 상당히 깊은데,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 호수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후지산이 호수에 비친다. 아시 호수에는 해적선이라 이름 붙은 유람선이 관광객들을 태워 운항하고 있다. 


후지 산록에 도착하였다. 후지산으로 오르는 도로는 잘 닦여 있다. 산록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후지산은 높이 3,539미터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활화산으로서 그동안 여러 차례 폭발하였는데, 가장 최근에는 1707년에 대폭발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에도(지금의 동경)에도 화산재가 많이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후지산에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은 해발 2,500미터 지점에 있는 후지산 5번 휴게소(富士山五合目 休憩所)까지 이다. 이 곳에서 올려다보면 저 위에 후지산 정상이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는 후지산 기슭이기 때문에 후지산 전체를 보는 데는 오히려 불편하다. 높이가 2,500미터나 되므로 상당히 춥다. 주차장과 휴게소는 꽤 큰데,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중국인 관광객을 싣고 온 관광버스가 수 십대는 되어 보인다. 

후지산과 마지막 5번 휴게소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다시 자동차로 하산하였다. 아타미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다른 길을 택했다. 후지산 자락의 유명한 온천장인 고텐바(御殿場)를 우회하여 돌아오는 길이다. 내가 일본에 처음 간 것은 1988년인데, 그때  KDI와 일본의 종합연구개발이 공동 주관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회의는 고텐바 시내와 가까운 후지산 자락에 있는 케이단렌(經團聯) 영빈관에서 열렸는데, 3일간 그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회의를 했다. 그때는 날씨가 매우 좋아 매일같이 눈 덮인 후지산 정상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외딴 카페에 들렀다. 여기서는 멀리 후지산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후지산 휴게소에서 보는 것보다 여기서 보이는 후지산이 오히려 더 멋있다. 


오후 4시경 아타미에 도착하여 렌터카를 반납한 후 동경행 열차를 탔다. 숙박은 우에노(上野) 역 근처의 호텔로 정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벌써 깜깜하다. 체크인을 마친 후 식사를 하러 나왔다. 마침 야키니꾸 집이 보이길래 고기로 배를 채우고 오늘 여행 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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