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0. 25) 우에노 공원, 야스쿠니 신사, 아메요코 시장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가끔식 가랑비가 뿌리기도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가려고 하니까 비가 점점 더 세차진다. 호텔에서 우산을 샀다. 작은 우산이라 제대로 비를 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먼저 우에노 공원(上野公園) 주위를 관광하기로 했다. 나는 이미 전에 우에노 공원에는 수없이 많이 와보았지만, 집사람을 위해서 다시 가기로 했다. 우에노 공원 뒤 쪽으로는 절이나 조그만 박물관이 군데군데 있다. 생활박물관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보였다. 건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일본의 옛 가정집처럼 생긴 집이다. 재미있을 것 같아 들어가 보니, 1930-50년 정도의 일본의 보통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생활도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우물을 푸기 위한 펌프가 있고, 오래된 세숫대야, 바켓츠 등이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양초, 성냥, 백열등, 장농, 식사도구 등 옛날의 서민들의 극히 평범한 살림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1950-60년대에 어느 집에서나 갖추고 있던 살림도구였다.
어릴 때의 아련한 옛 생각이 난다. 이러한 감정을 일본어로는 “나쯔카시이”(なつかしい)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말로는 아주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떤 감정인지는 알고 있는데, 표현할 말이 없다는 것도 답답하다. “나쯔카시이”는 굳이 번역하자면, “반갑다” 정도라 할 수 있는데, 그것과는 역시 좀 다른 감정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관영사(寛永寺, 칸에이지)란 절이 나타난다. 동경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기 아주 넓은 평야 지대이다. 따라서 산을 보기는 힘들다. 이곳 우에노 공원은 낮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이 없는 동경에서는 이 낮은 구릉을 도에이잔(東叡山)이라 부른다. 도에이잔은 동쪽에 있는 히에이잔(比叡山)이라는 뜻으로, 히에이잔은 교토(京都)에 있는 산으로서, 예부터 신앙의 대상이 된 산이었으며, 불교 천태종의 본사인 연력사(延暦寺, 엔 레키지) 등 많은 사찰이 위치하고 있다.
도에이잔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산이라 말하기는 좀 우스운 아주 낮은 구릉이다. 관영사(칸에이지)는 천태종의 또 다른 본사로서 매우 큰 절이다. 과거에는 우에노 공원을 포함한 이 일대 전부가 관영사의 땅이었으나, 지금은 우에노 공원을 포함한 여러 시설들이 들어와 절은 매우 좁은 터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관영사의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은 여전히 화려한 옛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관영사를 나와 우에노 공원으로 갔다. 우에노 공원에는 동조궁(東照宮, 도죠큐)이 있다. 동조궁은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모신 신사로서, 원래의 동조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래의 영지인 시즈오카 지방에 있으나, 후에 이를 이전하여 이곳 우에노와 닛코(日光)에 다시 건설하였다.
우에노 공원은 벚꽃이 유명하다. 일본인들은 봄 벚꽃놀이를 매우 즐기는데 벚꽃 철이면 가족이나 친구끼리는 물론, 직장에서도 함께 벚꽃놀이를 즐긴다. 그러므로 벚꽃 철에는 이곳 우에노 공원에는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가장 말단 사원들이 벚꽃놀이 전날 미리 나와 자리를 잡아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다.
우에노 공원에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최고 공로자의 한 사람인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의 동상이 서있다. 사이고 타카모리는 규슈의 최남단, 그러니까 지금의 가고시마(鹿児島) 지역인 사쓰마(薩摩) 출신의 하급 사무라이였으나, 명치유신 때 황군(皇軍)의 총사령관으로서 군사를 지휘하여 막부를 쓰러트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적을 토대로 명치유신 이후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국사를 좌지우지했으나, 명치유신 공신들 간의 의견의 대립으로 결국 고향인 사쓰마로 낙향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 반란을 기도하여 군사를 일으켜 구마모토(熊本) 성에서 농성하면서 메이지 정부에 저항하였으나,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사건을 일본에서는 서남전쟁(西南戰爭, 세이난 센소)이라고 한다.
사이고 타카모리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였다고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매우 미워하고 있으나,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사색가라기보다는 행동가였고, 조금 무모한 면도 있지만, 실행력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NHK 대하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이고 타카모리=정한론]으로 연결 짓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가 정한론을 주장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가 정한론을 주장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잘 계획되어 비중 있는 주장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다음 목적지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반감의 대상인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이다. 이곳에는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포함하여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여기에 2차 대전의 전범의 위패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로 치면 국립 현충원 같은 곳이다. 그런 만큼 위압적일 만큼 경비가 강하다. 이곳에 참배를 한다는 것은 전범들에게 참배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나 중국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과거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가나 관리들은 공식적인 야스쿠니 참배를 극도로 자제하였으나, 아베를 비롯한 최근의 정치인들은 아예 대놓고 참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관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야스쿠니 신사 주위에는 음식점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겨우 이태리 음식점을 찾아 피자와 파스타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다시 우에노로 왔다. 우에노 지역의 새로운 명물로 <스카이 트리>가 있다. <스카이 트리>는 전파 송출용 탑으로서, 높이가 600m가 넘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공 구조물이다. <스카이 트리>는 2011년 완공되었는데, 탑 아래쪽은 많은 상점, 식당들이 입점해있어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곳 우에노 근처에는 전자제품 상가로 유명한 아키하바라(秋葉原)가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 전자제품이 종류도 다양하고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평가되어, 구태여 일본에 가서 전자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1980-90년대에는 전자제품 하면 일제가 최고로 여겨졌다. 아키하바라는 우리나라 용산전자상가에 비해 몇 배나 크며, 대형 전제제품 양판점도 많이 입점해 있는데, 1980-90년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봐야 우리나라에도 다 있어 별로 갖고 싶은 물건은 없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벗어나지만, 아키하바라의 또 하나의 명물은 일본의 아이돌 걸 그룹인 <AKB48>이다. 이곳 우에노는 AKB48의 활동 본거지이다. 일본에서도 걸 그룹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AKB48>은 새로운 공연 개념을 들고 나왔다. 이전에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려면, TV나 콘서트 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AKB48은 팬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전용 극장인 <AKB48 극장>에서 매일 상설공연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메스미디어를 통한 먼 존재가 아니라, 팬들이 멤버를 가까운 존재로서 감정이입을 하여 응원하며, 그 성장과정을 공유하는 스타일이다.
<AKB48>이라는 그룹명 때문에 멤버 수가 48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정규 멤버와 연수생을 합하여 100명이 넘는 멤버가 적을 두고 있다. 2010년에는 멤버 수가 48인이었으나, 2013년에는 88명에 이르게 되어 멤버 수 최대의 그룹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또 <AKB48>은 많은 자매 그룹을 두고 있다. AKB48과 이들 자매그룹을 합하여 <AKB48 그룹>이라고 한다. 자매 그룹으로서는 일본 국내에 SKE48, NMB48, HKT48, NGT48, STU48이 있으며, 외국에는 JKT48, BNK48, MNL48, AKB48 Team SH, AKB48 Team TP, SGO48, CGM48, DEL48이 있다.
<AKB48>이라는 그룹명은 그들의 본거지가 위치한 아키하바라(AKIHABARA) 또는 하키하바라의 속칭인 아키바(秋葉, AKIBA)에서 유래하였다. AKB48 결성 사업을 시작할 때는 이를 <하키하바라48>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으나, 여러 미디어에서 이를 <Akihabara48>로 쓰기 시작하였고, 더욱 간단히 <AKB48>로 표기하였으며, 이로부터 프로젝트팀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AKB48이라는 로고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AKB에 48이라는 숫자를 붙인 것은, AKB 다음에 무슨 단어가 들어가면 좀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어 상품개발 번호처럼 무기질 성격이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또 당초 결성 초기에는 멤버가 1군 24인, 2군 24인으로 모두 48인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럼 그룹 멤버를 왜 하필 48명으로 하였을까? 그것은 AKB48 프로젝트를 추진한 인사가 속한 회사의 이름이 <office48>이었고, 이 회사의 사장인 시바 코타로(芝幸太郎)가 4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럼 시바 사장은 왜 4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였을까? 이는 그의 성인 ‘시바’가 숫자 48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50인 정도로 한다는 말을 듣고, 이왕 하려거든 48명으로 해달라고 부탁하였기에 멤버 수를 48명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옆길로 빠진 것 같다. 날이 조금씩 저물고 있다. 비가 그쳐 이제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도 좋다. 재래시장인 아메요코(アメ横) 시장으로 갔다. 아메요코 시장은 동경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서, 동경의 유명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시장 이름이 “아메요코”라 이름 붙게 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제2차 대전 직후 설탕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이 주변에 중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사탕(飴, 아메)을 팔아 이것이 단 맛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대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고구마 사탕>(芋あめ, 이모 아메)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 다르게는 미국 점령군의 물자를 몰래 빼돌려 파는 상점이 많았기 때문에 ‘아메리카’의 ‘아메’를 따와 아메요코라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재래시장은 이곳저곳 볼 것이 많다. 일본에 가든, 미국에 가든, 중국에 가든, 동남아에 가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국가의 특색을 찾기 어렵다. 어느 나라에 가든 파는 물건이 거의 비슷하고, 점포 디자인도 유사하다. 그렇지만 재래시장은 그 나라의 고유한 특징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거의 두 어 시간을 어슬렁거리며 아메요코 시장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한다. 이것으로 이번 일본 여행기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