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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22. 2020

오키나와 여행(1): 북쪽이란 것

(2017.03.22) 안바루 헤도 곶에서


동, 서, 남, 북,

네  방향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매우 다르다. 또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에 따라 각 방향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갖는다. 어느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공통의 자연적, 지리적 환경, 그리고 공통의 사회적 경험을 갖기 때문에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느끼는 감정도 유사한  경우가 많다.


서양인들은 아마 남북보다는 동서에 대해 특별히 다른 느낌을 가질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이후, 로마, 중세를 거쳐 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진 동서양 간의 갈등, 또 같은 유럽 안에서도 동유럽과 서유럽의 갈등. 따뜻하고 풍요한 서유럽에 비해 춥고 황량한 동유럽. 냉전시절 자유진영의 서유럽과 공산진영의 동유럽.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서구인들은 서쪽에 대해서는 긍정적 느낌을, 동쪽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느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남북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 같다. 북구 국가들은 옛날에는 바이킹족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국력이 중부나 남부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로마시대 이후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근대의 러시아로부터의 위협도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이를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아니라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동양에서는 어떨까?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 동북아 사람들에게는 동서보다 남북에 대해 갖는 감정이 각별한 것 같다. 중국  한시에서도 남북을 대비해서 부르는 노래는 많지만 동서를 대비한 시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나타나는 표현들을 보면 북쪽은 거친 환경, 고생, 절망 같은 부정적 느낌이, 남쪽은 풍요, 행복, 풍류와 같은 기분 좋은 느낌들이 압도적이다. 특히 중국은 북쪽의 몽고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으므로 북쪽에 대한 느낌은 더더욱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더 말을 해서는 뭣할까? 남쪽과 북쪽에 대한 노래는 많지만, 동서를 노래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물론 동서 간 지역감정  등의 갈등도 있지만 남북의 갈등과는 비교도  안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북쪽이란 방향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부정적, 비관적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남쪽에 대해서는 대부분 가슴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북쪽은 추운 겨울, 척박한 땅, 야만족들과 끊임없이 대척하는 변경의 땅, 나라를 잃고 추방된 땅, 등등 대부분 부정적 감정이다.


게다가 남북 분단까지 되어 있어, 두고 온 가족, 이별, 동토의 국가 등으로 국민 대다수는 북쪽이란 방향에 대해 기쁨보다는 슬픔을, 행복보다는 불행의 느낌을 가질 것이다. 물론 압제로부터 조국을 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선구자>라는 노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뻥이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말 달리던 선구자"는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를 침략한 일본군이다. 전형적인 친일노래라는 것이 다수 학설이다.


이에 비해 남쪽에 대한 느낌은 아주 기분 좋다, 희망, 행복, 그리운 추억, 풍요  등등 전반적으로 좋은 감정이다. 20여 년 전 김만복 일가는 북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오기도 하고 봄처녀나 강남 갔던 제비도 남쪽에서 온다. 그리운 곳은 내 고향 남쪽 바다, 마산이고,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도 집사람이 졸업한 대구 신명여고 앞동산이다. <남행열차>나 <비 내리는 호남선>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정치는 주로 동서 간의 갈등이었다. 천 년 전 겜뻬이(源平)의 전쟁은 동쪽의 미나모토 가(源氏)와 서쪽의  타이라 가문(平氏)의 건곤일척의 대결이었다. 도요토미(豊臣) 가를 멸망시킨 세키가하라(関ヶ原) 전쟁도 동쪽의 토쿠가와(徳川) 가와 서쪽의 도요토미(豊臣)  가의 천하쟁패전이었다. 지금도 일본에는 관동과 관서 간 지역감정이 적잖이 남아있다.


이렇듯 일본에서 정치적으로는 동서의 갈등이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남북에 대해 더 깊은 감정을 갖는다. 일본인들의 시나 대중들의 정서를 노래하는 대중가요를  보더라도 동과 서를 노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남북, 그 가운데서 압도적  다수가 북쪽을 노래한다.


여기서 북쪽은 이별, 슬픔. 실연, 도피, 절망, 불륜을 상징한다. 사랑을 잃고 북으로 떠나며(津軽海峡冬景色), 도시에서 모든 것을 잃고 북으로 도피한다(海峡). 북쪽의 여관으로 불륜 여행을 떠나며(山茶花の宿), 북쪽 여관에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옛 애인이 편지를 보내온다(北の宿から). 외로운 나그네는 정처 없이 북쪽을 떠돈다(風雪ながれ旅). 북국의 봄을 노래한 가슴 따뜻한 노래(北国の春)도 있지만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러면 우리 동양 3국에서는 왜 한결같이 북쪽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까? 가장 큰 이유는 자연환경 때문일 것이다. 먼저 춥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황폐해지고, 또 토지가 척박하고 기후가 나쁘다 보니까 농산물도 잘 안되고. 그 결과로 모두가 가난하고.... 우리가 추운 겨울날 몸과 마음이 얼마나 위축되는지 아마  모두 잘 알 것이다. 하물며 배까지 고프다면...


20여 년 전 추운 겨울 혼자서 일본 홋카이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북쪽 끝 왓카나이(稚内)까지  가서 최북단 단애에 섰다. 그 조금 위쪽 바다가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전투기에 피격되어 몇백 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된 곳이다. 바다는 거칠었고,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찬 바람은 온몸을 후려쳤다. 거칠고 높은 흰 파도는 어금니를 드러내고 쉴 틈 없이 절벽을  때린다. 그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시한다면 "황량"이라는 말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 북쪽은 모든 것이 황량했고, 북쪽 바다는 매우 거칠었다.


어제 나와 집사람, 그리고 아들과 셋이서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왔다. 아열대 지방이라 공항에서 내리면서 동남아 공항에서 느낄 수 있는 습하고 더운 공기와 향신료 냄새가 아주 조금 묻어나는 느낌을 가졌다. 오늘 아침부터 관광을 시작했다. 습도가 높았지만 기분 좋게 따뜻한 날이었다. 무덥다는 느낌 직전의  따뜻함. 잔잔한 코발트 빛 바다는 푸르다 못해 투명하다.


오후 6시 오키나와의 최북단 얀바루의 헤도 곶에 갔다. 이곳은 천애 절벽이다. 오키나와의 최북단이지만 제주도는 물론, 따뜻해서 일본 겨울 골프의 메카라는 규슈의 미야자키나 가고시마보다도 수백 킬로 남쪽의 아열대권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천애 절벽 위는 거친 바람으로 황량했고.  까마득히 내려 보이는 바다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파도는 흰 이빨을 드러내며 부서졌다.


오키나와 북쪽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천애 절벽과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느낌이 겨울의 홋카이도의 왓카나이 단애에서 가졌던 느낌과 흡사했다. 아열대의 남쪽 섬이지만 그 북단은 여전히 황량감을 준다. 북쪽과 북쪽 바다가 주는 느낌은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다. 뉴질랜드에 가면 어떨까?


2017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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