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 항공사의 비리에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노조(勞組) 지도자의 투쟁
일본 드라마 <지지 않는 태양>은 그동안 몇 번이나 감상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목에서 오는 인상이 일본 “국뽕 영화”인 것 같아서 멀리하였다. 그러다가 특별히 감상할 다른 드라마로 없고 해서 감상하였는데, 일본 국영항공사를 모델로 회사 비리와 그것을 감추기 위한 노조탄압, 그리고 그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는 이야기로서, 대단히 흥미 있는, 그리고 여운이 많이 남는 드라마였다. 그동안 감상한 일본 드라마 가운데 손꼽히는 수작(秀作)이라 생각 한다.
드라마 <지지 않는 태양>은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인 야마자키 토요꼬(山崎豊子)가 쓴 장편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으로서, 2016년에 방영되었다. 이 소설은 이미 2009년에 영화화된 적도 있었다. 원작자인 야마자키 토요코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의료 드라마 <하얀 거탑>을 쓴 작가로서, 사회성 있는 소설을 많이 썼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국적 항공사인 <국민항공>이라는 항공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국민항공>은 현재의 일본항공(日本航空, JAL)을 모델로 한 것으로, 드라마 속에서는 반관반민의 공기업인 것으로 나오고 있다. 국민항공의 노조 지도자인 온치 하지메(恩地元)를 중심으로, 단독 항공기 사고로서는 사상 최악의 사망자를 낸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 등을 모델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국민항공의 평범한 사원인 온치 하지메는 어느 날 출근을 하자, 자신이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인사 게시판을 보게 된다. 온친는 어찌 된 일이냐고 상사에게 묻자 상사는 자신이 추천한 것이라며, 걱정 말고 잠시 동안 노조위원장을 하라고 강권한다. 국민항공 노조는 전형적인 어용노조로서, 회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노조이다.
온치가 노조위원장이 된 후, 국민항공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킨다. 온치가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열악한 노동조건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온치는 국민항공의 안전을 위해 안전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한다. 그러나 경영진이 이를 거절하자 온치는 수시로 파업을 하며, 마침내는 해외순방 후 귀국하려는 수상의 귀국 비행 편을 연기하는 수단을 택하게 된다. 온치의 활약에 의해 노조는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하나씩 관찰시키지만 온치는 회사로부터 완전히 찍혀버린다.
회사에서는 그를 공공연히 “빨갱이”라 하며 배척하고, 국민항공을 지도하는 운수성에서도 온치를 위험인물로 찍어버린다. 회사에서는 노조에 대항하기 위하여 새로운 어용노조를 만들며, 또 또 노조를 담당하는 임원으로서 과거 사회주의 운동으로 투옥 경력이 있는 인사를 임명한다. 그 이사는 회사 경영진 다른 누구보다도 온치를 교묘한 방법으로 압박한다.
온치가 노조위원장직을 마치자 회사는 그를 파키스탄으로 발령 내어 버린다. 국민항공 인사규칙에는 해외, 특히 오지에 발령된 사람은 반드시 2년 안에 본사로 불러들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회사는 파키스탄 발령이 끝나자, 이란으로, 그리고 케냐로 그를 발령 내어 버린다. 이란이나 파키스탄은 국민항공의 지점이 있는 곳도 아니므로, 온치는 거기서 혼자서 일을 만들어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그는 파키스탄, 이란, 케냐에서 10년을 보내게 된다.
국민항공의 기업 내 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고, 회사를 둘러싼 비리도 커지게 된다. 이때 온치는 마침내 10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국민항공의 문제점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자, 마침내 수상은 국민항공을 개혁할 새로운 사장으로서 오사카에서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사업가를 임명한다. 새로운 사장은 취임하면서 온치를 개혁 담당 추진기구로서 사장실을 만들고, 온치도 그 일원으로 영입한다. 새로운 사장의 개혁은 거침없이 추진된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회사 내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이익을 향유하던 인물들이 조직적으로 반항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운수성의 힘을 빌려 새로운 사장의 개혁작업을 막으려 한다. 그럼에도 개혁작업이 계속되자, 새로운 사장을 삼고초려하여 모셔온 수상마저도 이를 부담스러워한다. 결국 새로운 사장은 국민항공 내외의 저항에 직면하여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난다.
회사 내에서 이루어진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내부 감사는 물론 사법당국의 조사가 시작된다. 마침내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회사 간부와 운수성 공무원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 그러나, 문제가 되어 형사처벌을 받은 사안은 회사 내의 수많은 부정부패와 부조리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제기되었던 수많은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된 것인지 특별한 내용 없이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이 드라마에서는 수많은 다양한 국민항공의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경영 난맥상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결말에 가서는 문제가 거의 해결된 듯이 보이며 해피 엔드로 드라마가 끝나지만, 실상은 해결된 것이 그동안 드라마에서 제기된 문제 가운데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일 처리를 적당히 얼버무려버리는 암묵적 카르텔 성향의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 그리고 기업과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개인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압력 등 여러 면에서 가슴에 남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고 일본도 몇십 년 전까지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거나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딱지를 붙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하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일본에서는 “빨갱이”를 “아까”(赤)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