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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09. 2021

공주 공산성 산책

(2021-09-22) 초가을 백제의 옛터를 찾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이미 은퇴를 했기 때문에 내게 휴일이란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직장 생활의 습성이 남아 그런지 좀 특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완연히 가을이다. 며칠 동안 집에서만 지내서, 가까운 곳에 산책이나 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금강변 도로를 따라 20분 남짓 달리면 공주 공산성이 나온다.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일 년에도 몇 번씩 이곳을 찾는다. 한적할 걸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로 붐빈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는데, 도로면에 차들이 많이 주차해있다. 다른 차들도 다 도로변에 주차하는데 나 하나 더 주차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을라구. 도로면에 주차를 하고 공산성으로 갔다. 오늘은 추석 연휴라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공산성은 옛 백제의 왕궁이 있던 곳이다. 잘 아시다시피 백제의 건국 이후 500년 동안은 지금의 서울인 위례성이 도읍이었고, 그다음이 지금의 공주 지역인 웅진성(熊津城)으로서, 다시 도읍을 현재의 부여 지역인 사비성(泗泌城)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공산성은 바로 그 웅진 부여의 왕성(王城)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공산성이라길래 후삼국 시대 대구 팔공산 지역에서 왕건과 견훤이 대규모 전투를 벌여 왕건이 참패한 공산성 전투를 떠올렸었는데, 웅진 백제의 왕성이 공산성이란 것은 세종시에 이사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 시대에 이 성은 ‘웅진성’이라 불리었고, 공산성이란 이름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웅진성은 알았어도 공산성은 몰랐던 것이다. 


공산성은 금강을 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안내문을 보니 성벽 둘레가 2,200미터 정도라 한다. 성의 모습은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겼다. 성에 들어가면 성곽 위로 성을 일주하는 성곽 길이 있고, 성의 가운데로 지나는 길이 있다. 성곽 길은 오르내림이 심하기 때문에 성 가운데 난 길로 걸었다. 길 양 옆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서늘한 가을 날씨에 숲 공기가 더없이 상쾌하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비가 내린 뒤라 공기가 깨끗해서인지 햇볕이 따가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성 안의 길은 온통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더없이 시원하다. 조금 걷다 보니까 길 옆에 유물 탐사 흔적이 보인다. 공주대학교 유물조사팀이 벌이고 있는 유물 발굴작업이란다. 

공산성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평지가 거의 없다. 성문을 들어서서 안쪽 길로 들어서면 저 아래쪽에 공터가 나오고 몇 개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성 안에 있는 평지의 거의 전부이다. 성의 둘레가 2,200미터라 하니까 성의 전체 면적은 7-8만 평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가운데 평지는 2만 평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과연 백제 시대에 이곳이 과연 왕성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주인구를 천명 이상은 수용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공산성은 성이 강을 낀 언덕 위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방어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성 안이 좁고, 사람이 이용할 만한 평지가 거의 없어 일상적인 주거나 행정의 중심으로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산성을 걸으면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둘 다 금강을 끼고 옆 언덕 위에 세워진 성으로서, 성 안의 길도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성 가운데 좁은 평지가 있고, 금강을 연한 좁은 평지에 절이 들어서 있는 것도 같다. 부여는 이곳 공주보다 금강 하류 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성 앞을 흐르는 금강도 여기보다 훨씬 넓고 또 물도 많다. 부소산성이 위치한 곳도 낙화암이 있을 정도로 여기보다는 훨씬 더 높은 언덕이다. 성벽이 길이와 면적도 이곳보다 훨씬 더 길고 넓다. 그래서 부소산성을 축소한 것이 이곳 공산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공산성은 규모가 작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성 안을 대략 돌아볼 수 있다. 성문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조금 걷다 보면 돌다리가 나오고 돌다리 옆을 돌아가면 영은사가 나온다. 영은사가 있는 곳은 성안의 유일한 평지로서, 바로 금강을 앞에 두고 있다. 


영은사를 잠시 둘러보고 다시 산책길로 올라가서 시원한 숲 바람을 즐기며 걷는다. 곧 성벽 길이 나온다. 이 성벽 길은 공산성 안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서, 아래로는 금강의 전경이 펼쳐진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곳 공산성 앞 금강에서 <백제 문화제>가 개최된다. 지금도 백제 문화제 기간인 것 같은데, 코로나 탓인지 행사장이 한산하다. 예년에는 백제 문화제가 개최될 때는 금강변 주차장은 물론 금강 주위의 도로들이 모두 주차된 자동차로 덮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렇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말미암아 행사 자체도 축소하고, 또 사람들도 그다지 찾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금강 위에는 행사를 위한 배가 떠 있고, 강 주위에도 행사시설을 마련해두고 있다. 

금강 건너편 저 먼 곳에는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다. 원래 공주시는 금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금강 북쪽에 새로이 신도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공주의 구도심에 아직도 지방도시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새로이 건설된 신도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신도시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이곳 공산성에서 금강을 앞에 두고 펼쳐지는 공주 신도시의 전경은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  


성벽길을 따라 걸었다. 아주 가파른 구간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영은사 앞 금강을 앞에 둔 넓은 평지가 나온다. 요즘 계속해서 집에만 들어박혀 있어서 거의 걷지를 못하였다. 오랜만의 산책이라 조금 걸었는데도 숨이 찬다. 겨울에는 추워서, 여름에는 더워서 못 걷고 날씨 좋은 봄가을에도 무슨 핑계로든 집에만 있는 일이 많다. 자주 걸어야겠다. 집에서 공산성까지 금강 산책로를 이용하면 25킬로 정도 되는 것 같다. 한번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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