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로
바보 “영구”를 탄생시킨 우리나라 역대 최고 인기 TV 드라마
우리나라에서 TV 방송이 시작된 것이 1961년이었으니까, 올해로 60년이 다되어 간다. 그동안 TV에서는 수많은 드라마를 방영하였는데, 그 많은 드라마 중에서 어떤 드라마가 제일 인기가 있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1972년 KBS에서 방영된 일일드라마 <여로>가 가장 큰 인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청률이 거의 80%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앞으로도 그런 시청률을 기록할 드라마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집에 TV를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있으면, 이웃집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어떤 사람은 방안까지 들어와, 어떤 사람은 마루에서, 또 어떤 사람은 마당에서 TV를 함께 보는 것이 일상이다시피 하였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으로서 대구에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도 몇몇 TV를 가진 집이 있었으나, 우리 집에는 그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25인치짜리 미제 TV가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TV를 보러 왔다.
드라마 <여로>는 장욱제와 태현실이 주연을 맡았는데, 사실상 주인공은 태현실이라고 해도 좋았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분이(태현실)는 집안을 도우려고 술집으로 팔려간다. 거기서 사기꾼인 달중을 만나, 달중의 중매로 시골 부자인 최 주사 댁 며느리로 들어간다.
최 주사의 아들 영구는 저능아이면서 몸도 불편하다. 그런 영구를 분이는 지극 정성으로 모신다. 그리고 최 주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까지 낳는다. 그러나 영구의 계모이자 분이의 시어머니인 박주아(극중 이름은 미상)는 그 딸과 함께 분이를 천대하고 구박한다. 아무리 구박하고 천대하여도 분이가 흔들리지 않자, 그들은 과거 분이가 술집에 있었다는 것을 최 주사에게 일러바치고, 결국은 분이는 아들까지 남겨두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쫓겨난 분이는 전쟁의 와중에서 식당을 하여 큰돈을 번다. 그리고 그녀는 번 돈으로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도운다. 이러한 분이의 선행이 널리 알려져, 미담 기사로 신문에도 나게 된다. 한편 최 주사 집안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죄다 날리고, 가족 모두가 거의 거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침내 대전역에서 분이와 최 주사 댁 사람들이 만나게 되어 그들은 다시 결합하여 행복을 되찾는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당시의 보통 사람에게는 눈높이가 딱 맞는 드라마였다. 아마 7시쯤 이 드라마를 방영한 것 같았는데, 그 시간이면 온 나라가 조용해졌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률이 70%가 넘었다고 하니까 아마 전 국민이 모두 이 드라마를 보았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분이의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분이를 중매한 김달중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악인으로 등장한다. 얼마나 착한 분이를 괴롭히고 학대하는지 온 국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김달중 역을 맡은 탤런트는 지방에 갔다가 몰매를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어머니 역을 맡은 박주아와 시누이 역의 탤런트(아마 남능미가 아니었을까?)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어 제대로 밖을 나다니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분이의 남편 영구는 늘상 제기를 차고 논다. 하나, 둘, 셋 하면서 제기를 차지만, 처음 1개만 제대로 발에 맞추고 나머지는 헛발질만 하면서 둘, 셋을 헤아린다. 그리고 누가 자기를 부르면 자주 대답하는 말, 여로의 그 영원한 명대사
“영구 없~다.”
영구는 바보의 대명사로서 심형래에 의해 새로이 탄생된다. 드라마 여로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심형래의 연기를 보면, 영구의 말투와 행동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