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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25. 2021

영화: 홍콩의 단장잡이

악역 전문배우 이예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주 특별한 영화

젊은 사람들은 이예춘이라는 배우를 잘 모를 것이다. 바로 배우 이덕화의 아버지이다. 이덕화도 인기 있는 배우이지만, 이예춘은 인기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의 비중 면에서는 이덕화를 훨씬 능가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예춘이 영화에서의 비중은 높지만 그렇게 인기가 높지 않았던 것은 그가 “악역” 전문 배우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영화에서 악인이라면 으레 이예춘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은 영화에 따라 배우들이 악역을 맡았다가도 선한 역을 맡기도 하여 상대적으로 악역 전문 배우가 많다고 보기가 어렵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구분이 선명하여, 선한 역과 악한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예춘의 경우 내가 세어보진 않았지만, 만약 1,000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면 아마 990편 이상을 악인으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영화 <홍콩의 단장잡이>는 1970년 제작되었는데, 이예춘이 주인공인 순정파 중년 마도로스 역을 맡고 있다. 이예춘이 주인공을 맡고 그것도 아주 선한 순정파로 등장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아주 특별한 영화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마도로스인 상철(이예춘)은 어느 날 홍콩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소영을 구한다. 소영은 홍콩 암흑가의 보스(문오장)인 정부였다. 상철과 소영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첫날밤에 조직의 보스에게 소영을 빼앗기고 실명을 하게 된다. 


몇 년뒤 홍콩을 다시 찾은 상철은 나이트클럽의 마담인 향란(김창숙)과 사귀지만, 잠시도 소영을 잊지 못한다. 그런 중에 홍콩의 두 폭력조직 간 싸움이 벌어지고, 이에 가담하게 된 상철은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하는 소영을 만나게 된다. 상철은 조직에서 고용한 킬러(오지명)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서로 적대관계인 듯한 상철과 오지명은 힘을 합쳐 폭력조직을 모두 처치한다. 그리고 상철은 소영을 다시 만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헤어진다. 


이 영화는 홍콩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촬영은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것 같다. 영화 속에서도 홍콩이라는 지역이 특별히 무슨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닌데 왜 홍콩을 무대로 택했는지 궁금하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인가?

상철(이예춘)은 폭력조직 보스인 문오장에 의해 실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장님이 된 상철이 싸움을 너무 잘한다. 주먹싸움은 물론이고 총솜씨도 일류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비결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서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발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심각히 드러난다. 신혼 첫날밤에 상철은 폭력배 보스에게 소용을 빼앗기게 되는데, 보스도 소영을 한번 욕보이고는 버리고 만다. 그런데 상철은 소영이 스스로 좋아서 폭력배 보스를 택하였다고 믿는다. 소영이 그렇게 된 이유를 상철에게 몇 번이나 설명하려 하지만, 상철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소영의 입을 막아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기 혼자 짐작으로 그녀가 자기 외에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러 지레짐작하고 소영의 곁을 떠난다. 1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 소영의 설명만 들었더라도 둘이 헤어지는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요즘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무엇인가 설명을 하려 하면 상대는 지레짐작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고, 더 이상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것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헛되이 보낸 후 결국은 그 일의 전말을 알게 되어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지금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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