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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26. 2021

드라마:만복(만뿌쿠)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사업가 부부의 일생

세계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는 중국이지만, 그것은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국민 한 사람당 인스턴트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는 단연 우리나라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국민 한 사람이 일 년에 평균 76 봉지의 라면을 먹어, 2위의 인도네시아 52 봉지를 멀찍이 따돌리고 세계에서 단연 1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인스턴트 라면이란 것을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을까?


라면은 중국이 옛날부터 먹어온 국수의 한 종류이다. 라면은 1880년대 후반 일본이 개항하면서 요코하마, 코베, 나가사키 등에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하면서, 이때 이주한 중국인들이 가져와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1910년에 일본 동경에 중화요리점 <라이라이간>(来々軒)이 개점되어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주 메뉴가 “남경(南京) 소바” 혹은 “지나 소바”라 불린 라면(라멘)이었다. 이 <라이라이간>이 중국 면요리와 일본 식문화를 융합시킨 최초의 일본 라면(라멘)이라 한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중화 소바”라는 이름으로 라면을 파는 가게가 적지 않다. 이것을 시작으로 라면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라면 전문점, 중화요리점, 레스토랑, 포장마차 등 라면을 파는 가는 급속히 늘어났다. 이리하여 지역별로 독특한 라면이 생겨나면서 라면은 일본의 국민적 음식이라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일본의 라면가게

라면(일본어 발음으로는 “라멘”)이란 말은 대체 어디서 온 말일까? 모든 음식 이름이 그렇듯이 그것이 언제 어떻게 출발하였는지는 불분명하고,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제일 유력한 설이 중국 서북부에 있는 란주(蘭州)에서 많이 먹은 면의 일종인 랍면(拉麺, 라미엔)에서 왔다는 설이다. 한자로 “랍(拉)”은 “끌어당겨 늘린다”란 뜻으로, 랍면은 메밀국수나 우동과 같이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당겨 늘려 가늘고 긴 국수 형태를 만드는 수타법(手打法)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라면을 한자로는 “拉麺”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노면(老麺, 라오미엔)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전에는 라면이라면 으레 인스턴트 라면을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일본식 라면집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생라면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라멘”이라 한다면 당연히 식당에서 요리를 한 라면을 생각하며, 봉지라면이나 컵 라면은 반드시 “인스턴트 라면”이라 한다.  


그럼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다. 그는 발명가이자 기업가로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인 라면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닛신식품(日淸食品)이라는 기업을 창업하였다. 닛신식품은 지금도 일본의 유력한 종합식품회사로서 연 매출액이 약 5조 원에 달하고 있다.

닛신식품

드라마 <만복>(만뿌쿠)는 NHK TV소설로서 2017년 방영되었으며, 전체 151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드라마는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들어낸 닛신식품(日清食品)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와 그의 처 마사코(仁子)의 일생을 모델로,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실화에 바탕을 둔 픽션이며, 사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다.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와 마사코(仁子) 부부의 극 중 이름은 다치바나 만페이(立花萬平)와 다치바나 후쿠꼬(立花福子)로 나온다. 드라마 제목 만복(만뿌쿠)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남편 만뻬이와 부인 후쿠코의 이름 앞자 한 글자씩을 따서 “만뿌쿠”가 될 수도 있고, 배 가득 먹는다는 만복(滿腹)도 일본어 발음으로는 “만뿌쿠”가 된다. 그러니까 만뿌구 부부가 만들어가는 만뿌꾸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 “만뿌꾸”라 할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 시작되려 할 무렵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세 자매 가운데 막내 이마이 후쿠꼬(今井福子)는 발명가인 다치바나 만페이(立花萬平)를 만난다. 둘은 후쿠코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며, 월급쟁이가 되라는 장모의 입버릇에도 불구하고 만페이는 발명가로서 기업가의 길을 간다. 만페이는 발명가로서는 아이디어도 좋고 실력도 뛰어나지만 기업경영에는 서툴다. 좋은 발명으로 의욕적으로 창업을 하지만 몇 번이나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사업을 망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후쿠꼬는 남편을 격려하며, 쪼달리는 사업자금을 위해 곳곳으로 돈을 빌리러 다닌다.

만뻬이는 그의 성실함과 사업의 아이디어로 오사카 지역에서 큰 명성을 얻지만, 사업에는 늘 불운이 따른다. 사업을 잘 일궈 성공을 하려고 하면 꼭 무슨 마가 끼었는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 사업이 좌절된다. 만페이에 대한 사람들의 신망이 높아지자 오사카의 중소업자들은 만페이에게 상호신용금고 조합장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조합장이 된 만페이는 부실화된 신용조합을 다시 일으키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에게 융자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 직을 물러나고 만다.


다시 사업을 시작한 만페이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누구나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거쳐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회사는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를 모방한 수많은 업체가 난립하게 되고, 만페이는 다시 컵라면을 만들어 경쟁자들을 물리친다. 사업을 반석에 올린 만페이와 후쿠꼬는 평화스런 노년을 맞이한다.

이 드라마에서 후쿠꼬의 어머니이자 만페이의 장모인 이마이 스즈(今井鈴)의 역할이 재미있다. 그녀는 항상 사업을 한답시고 일을 벌이고는 실패를 거듭하는 사위가 영 못마땅하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잔소리고, 사위가 하고자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건다. 그렇게 만류해도 결국 사위는 제 갈길을 가며, 그로 인해 생기는 온갖 뒷일들을 노상 푸념을 하면서도 처리해준다. 그리고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 “저는 무사(武士)의 딸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저는 양반집 딸입니다.”이다. 그렇지만 딸들은 자기 어머니가 “무사의 딸”인 것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한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기업은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회장은 일본의 명성식품(明星食品)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라면을 생산, 판매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전중윤 회장이 라면을 생산하게 된 것은 “배고픈 국민을 배불리 먹이게 위해서”라 하며, 이것은 지금도 삼양라면사의 좌우명이라 한다. “가난한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라는 좌우명은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무후쿠 사장이 닛신식품을 창업하게 된 좌우명(motto)이다. 전중윤 회장은 라면 생산기술뿐만 아니라 기업의 좌우명까지 함께 수입해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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