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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24. 2021

영화: 카틴(katyn)

또 다른 학살의 기록

유럽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폴란드는 참 기구한 운명을 가졌던 국가인 것 같다. 19세기 이후 주위 강대국들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았으며, 나라도 이리저리 찢기고 뜯기는 시대가 반복되었다. 특히 2차 대전의 피해는 막심하였다. 대부분의 군 간부들이 학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 주민들이 수용소에서 한 줌 재로 변하였던 것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다시 힘을 키워가자 폴란드는 1932년과 1934년의 2차에 걸쳐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주위 국가들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에 따라 폴란드는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여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까지 독일과 적대관계에 있던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갖게 되었다. 1939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9월 1일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폴란드는 이에 대항할 군사적 대비를 강화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였다. 독일군을 향해 서쪽으로 총끝을 겨누고 있는 폴란드 군 등 뒤로 소련이 침공해온 것이었다. 불과 며칠 전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의 서쪽은 독일이 차지하고 동쪽은 소련이 차지한다는 비밀협약을 맺고, 이것을 실행에 옳긴 것이었다. 


믿었던 러시아로부터 허를 찔린 폴란드군은 변변히 대항도 못해보고 패배하였다. 그리고 몇십만의 폴란드 군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 소련군은 일반 병은 모두 석방하였다. 대신 장교 들과 지식인들은 모두 수용소에 가두었다. 수용소에 수용된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며 고통을 받았다. 이후 소련은 폴란드 군 포로들을 재분류하여, 그중 25,736명을 카틴 숲을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가 전원 총살하고 이들을 암매장하였다. 이들 중 8천여 명은 소련의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에 포로로 잡힌 폴란드 장교였으며, 6천여 명은 폴란드 경찰, 나머지는 폴란드 지식인이었다. 카틴 숲에서만 4,400명이 학살당하였다. 포로 재분류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400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 학살 사건은 여러 곳에서 벌어졌지만, 카틴 숲의 학살이 가장 먼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카틴의 학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 측에도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도 소련과 같은 연합국 진영이라 이 사건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상 조사까지도 방해한다. 2차 대전 종전 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다. 그 때문에 폴란드 정부도 이 사건을 나치의 짓이라고 왜곡하는데 동조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폴란드에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가 득세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또 서방에서도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소련을 비호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소련의 악행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체제경쟁에 유리하였으므로 바로 정밀조사에 착수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카틴 숲 학살사건>은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영화 <카틴>(Katyn)은 “카틴 숲 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이 영하에서 소련군에 체포된 폴란드 장교들은 처음에는 함께 독일의 공격을 막자고 했던 소련의 약속을 믿고 곧 석방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련군 관리자들은 이들을 아주 차갑게 사무적을 대응한다. 체포된 폴란드 장교들은 어렵게 가족과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현재의 상황을 모른 채 남편과 아버지, 아들과 형제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영화의 중반 무렵부터는 본격적인 학살이 시작된다. 영문을 모르게 숲으로 끌려간 포로들은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여 거대한 구덩이에 버려진다. 그리고 그 구덩이는 불도자에 의해 메워진다. 그렇게 숲에서 집단학살을 당하고, 수용소 내에서도 별 것도 아닌 일을 구실로 그 자리에서 처형당하기도 한다. 소련군들은 소용소에 있는 이들을 불러내어 한 사람 한 사람 성분 검사를 하기도 하지만, 거의 예외가 없이 처형된다. 


창기병 연대장의 아내인 안나는 남편인 안제이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안제이 또한 카틴 숲에서 학살되고 만다. 안나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카틴 숲에서 폴란드 군인들의 시체 무더기들이 발견된 후 어쩔 수 없이 소련군들이 그의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녀는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어 하나 모두가 이에 대해 침묵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안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가족들이 그 진상을 밝히기 위한 허무한 노력이 계속되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2008 폴란드 최우수 영화상을 받았으며, 2008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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