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찾기 위한 레지스탕스의 처절한 저항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미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로서 1966년에 개봉되었다.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파리를 지키려는 레지스탕스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이다.
전세가 이미 기울어 독일은 이미 패주일로를 걷고 있다. 히틀러는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하는 장군에게 적의 공격으로부터 파리를 지키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파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한편 파리에서는 레지스탕스들이 연합군이 이미 전세를 장악하였고, 독일군들이 크게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기세를 올린다. 레지스탕스들은 여러 개의 작은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어 통일적인 명령체계가 없고, 그런 만큼 작전의 수립과 실행에 있어서도 중구난방이다. 또 레지스탕스 조직 내에 독일군의 스파이들이 침투해 있어, 이들의 공격이 번번이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독일군의 역습에 대원들이 전사하고 많은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연합군이 가까이 왔다는 말에 레지스탕스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에 파리 시내에 있는 여러 계열의 레지스탕스들이 연합하여 독일 점령군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시청을 비롯한 주요 관공서 건물을 점거하고, 지구전을 벌인다. 이에 대해 독일군들도 탱크를 동원하는 등 반격을 가하지만 월등한 화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시가전의 특성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서로 대치상태가 계속된다. 이러한 가운데 레지스탕스들의 탄약도 바닥이 나가고, 무기도 변변히 조달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투력이 한계에 다다른다. 독일군과 레지스탕스 양측이 서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양측은 잠시 전투를 중단하는 휴전 협정을 맺는다.
독일군의 파리 파괴 계획을 알게 된 레지스탕스들은 파리 시내의 전황과 독일의 계획을 알리기 위하여 연합군과 접선을 하여야 하나, 독일군의 전선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연합군과의 접선은 거의 생명을 내던지는 위험한 일, 그러나 그러한 임무를 서로 맡겠다고 자원자들이 속출한다. 그리하여 연락 임무를 자처한 한 레지스탕스는 삼엄한 독일군의 경계를 뚫고 연합군의 진지에 다다른다. 도중에 독일 경비초소에서 경계를 뚫고 나가는 그를 발견하지만, 경비초소병들도 만약 그에게 사격을 가했다가는 자기들의 위치가 발각되어 연합군의 집중포화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뻔히 보고도 그를 그냥 보낸다. 개인의 인센티브와 국가 혹은 조직의 인센티브가 충돌하는 하나의 사례라 할까?
연합군 진지에 도착한 레지스탕스는 연합군 고위 간부들에게 파리를 해방시켜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연합군 지도부는 파리 수복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연합군 사령관인 미국의 패튼 장군은 “우리는 파리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우리의 목표는 독일군을 괴멸시키는 것이다. 파리 수복이 독일군 괴멸이라는 우리의 목표와 직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파리로 군사를 돌릴 수 없다.”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 레지스탕스들은 연합군에 포진한 프랑스 장성들, 영국 장성들에게 파리 수복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득한다. 마침내 패튼 장군도 그의 설득과 애국심에 감복하여 당초 계획을 수정하고 군대를 파리로 돌린다.
연합군은 큰 저항 없이 파리로 진군한다. 이 도중에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나와 연합군을 환영한다. 그리고 마침내 연합군은 파리로 진주하며, 독일군들은 파리를 불태우기 위해 시내 곳곳에 폭약을 설치한다. 그러나 연합군이 진주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독일군 대장은 끝내 파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미치광이(히틀러)의 명령을 들을 수 없다고 말하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장군의 사무실에 내팽개쳐진 전화기에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히틀러의 절규가 반복되어 나오지만 그에 응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영화는 냉전시대에 편승한 국뽕 영화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나는 이 영화에 큰 감동을 받았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에 대한 레지스탕스들의 저항 정신, 그리고 레지스탕스를 포함한 프랑스 국민들의 애국심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시대에 이미 컬러 영화가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흑백영화로 만들어 다큐멘터리적인 분위기가 더욱 살아난다.
이 영화에는 장폴벨몽도(Jean-Paul Belmondo), 샤를 부아이에(Charles Boyer), 레슬리 캐론(Leslie Caron), 장피에르 카셀(Jean-Pierre Cassel), 브루노 크레머(Bruno Cremer), 알랭 들롱(Alain Delon),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 글렌 포드(Glenn Ford) 등 많은 스타들이 등장한다. 보통 영화 같으면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할 배우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 영화에서는 한 두 장면씩의 등장에 그친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알랭 들롱조차도 전체 등장시간은 10분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이들 스타들은 스쳐가는 한 장면에 등장하곤 사라지고 많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출연료 없이 우정 출연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레지스탕스는 점차 기세를 올림에 따라 프랑스 경찰은 하나 둘 레지스탕스에 동조한다. 하지만 파리는 여전히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다. 두 사람의 젊은 남녀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맨 몸으로 파리 경찰청을 찾는다. 그리고 경찰 최고책임자를 만난 그들은 청장에게 “이곳 경찰청을 임시정부가 접수하겠습니다.”라고 통보한다. 그러자 경찰 최고책임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거수경례를 하며 “이곳 경찰청의 모든 통제 권한을 임시정부에 위임합니다”라 하며, 경찰 조직을 완전히 레지스탕스 쪽으로 넘긴다. 이 소식을 들은 경찰들은 사기충천하여 레지스탕스에 가담한다.
이 영화는 중학교 때 감상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옛날에 본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Is Paris Burning?”이라는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한번 본 영화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감상할 수 있으니까... 비록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영화이지만 꼭 한번 감상하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잊어버리긴 했지만 가슴을 찌르는 명대사가 적지 않다. 평점을 주라면 별 5개 만점이다. 아니 그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