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5) 도심 속의 계룡산
대전의 명산은 뭐니 뭐니 해도 단연 계룡산이다. 계룡산에 올라가는 길은 4곳이 있다. 동학사 길, 갑사 길, 신원사 길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수통골이다. 그런데 앞의 3코스는 공주시에 위치해 있어 유성에서도 제법 달려야 하지만 수통골은 불과 5킬로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대전 시민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수통골 코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종종 계룡산 산책을 즐기는데, 동학사, 갑사, 신원사 코스는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수통골은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그래서 어제 일요일, 단풍 구경삼아 수통골에 산책을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수통 길을 2킬로 이상 남겨두고 큰길 양쪽으로 자동차가 줄지어 서있더니, 산으로 가는 좁은 도로는 아예 꽉 막히다시피 하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이다. 도저히 차로 산 입구로 들어갈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계룡산은 그만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유성 5일장을 구경한 후 돌아오는 길에 농수산시장에 가서 회 한 접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한산할 걸로 생각하고 다시 수통골에 가보기로 하였다. 세종시 집을 출발하여 25분 정도가 되어 수통골 입구에 도착하였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일방통행 도로에 차가 제법 밀려있었으나 들어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주차장은 대부분 차있었으나, 운 좋게 빈 곳을 발견하고 주차를 한 후 산책을 시작하였다.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산이 꽤 붐빈다. 대전에서 접근성이 좋다 보니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는 것 같다.
수통골 양쪽으로는 음식점을 비롯한 여러 상업 시설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시내의 웬만한 유흥가보다도 음식점이나 술집이 더 많은 것 같다. 수통골 입구를 통과하니 계곡 옆으로 넓은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길도 넓은 데다가 경사도 거의 없어 걷기에 그만이다. 다만 오기 전엔 단풍을 잔뜩 기대하고 왔지만, 단풍다운 단풍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퇴색한 듯한 누런 색의 벚나무 단풍이 더러 보이고 대부분의 나무는 아직 푸른색을 띠고 있다. 이곳은 아직 단풍철이 되지 않아 그런지, 아니면 단풍이 드는 나무가 적어서 그런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단풍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걷기에는 참 좋다. 요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사가 급한 길은 오늘 때나 내려올 때나 모두 부담이 되는데, 이렇게 평탄한 길은 아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을이라 그런지 계곡에 물은 그다지 없다. 계곡의 폭은 상당히 넓은데 비해 물은 쫄쫄 흐르고 있는 정도이다. 조금 가다 보니 철제로 만들어진 빨간 다리가 보인다. 주위 경치와 꽤 잘 어울린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계곡물을 가두어 둔 곳이 나온다. 그 주위에는 나무로 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물속에 비친 숲의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길이 갑자기 좁아진다. 이제야 산길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사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는 길이 넓어 나무 그늘 사이로 햇볕을 쬐며 올라왔지만, 이제부터는 좁은 길을 울창한 숲이 덮고 있어 그야말로 녹음 속을 걷는다. 좁은 길을 그렇게 얼마간 가다 보니 작은 쉼터가 나온다. 나이 든 사람 몇몇이 둘러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다. 이곳부터는 이제 경사가 급한 본격적인 산길이다. 지도를 보니 2킬로 정도 걸었다.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에 비해 좀 더 아기자기하다. 나무로 된 산책로가 숲 속으로 이어져 있어 한결 숲길을 걷는 기분이 난다. 하루의 가벼운 산책으로는 딱 알맞은 코스이다. 오늘 밤 잠은 잘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