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 암살기도 사건- 황제와 자객의 인간적 교감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 영화는 거의가 무협영화이다. 1990년대까지의 중국 영화는 대개 홍콩영화로서, 홍콩 무협 영화의 경우 주인공 및 악당 두목급 등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캐릭터가 좀 경박스러운,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촐랑대는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로부터 인간적인 무게 같은 것을 거의 느끼기 힘들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세트에서 촬영되어 웅장한 맛이라 할까, 어떤 스케일 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영웅>은 과거의 중국 영화(홍콩 영화)와 차별화되는 무게감과 영상미, 그리고 진중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느낌은 이후 개봉된 <야연>(夜宴)에도 연결되어, 이 무렵부터 중국 영화는 과거와는 한층 다른 새로운 레벨로 올라섰다는 느낌이 든다. <영웅>은 2002년 중국에서 제작되었는데, 세계적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담당하였다. 이 영화는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미국에서도 중국 영화로서는 기록적인 흥행수입을 달성하였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의 진시황은 폭정이 극에 달하였다. 이에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진시황은 여러 번에 걸친 암살 시도로 자객들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어 조정 대신들 이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100보 이내로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시황은 은모 장공, 잔검, 비설이라는 4명의 인물이 자기를 암살할 자객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이에 진시황은 이 중에서 셋을 죽인 자에게는 자신 앞 10보에서의 알현을 허락하며, 자신과 술을 함께 함은 물론 보상으로 수많은 재물과 관직, 땅을 준다는 영을 내린다.
그러던 어느 날 무명이라는 자가 나타나 세 협객을 처단하였다며, 그들의 무기를 진시황에게 바친다. 이에 진시황은 무명과 대화를 시작한다. 실제로 무명은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자객이며, 그가 가져온 세 협객의 무기도 실제로는 세 협객과 모의하여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는 황제의 10보 이내의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먼저 진시황은 무명에게 자신으로부터 100보 밖에 꿇도록 하고, 세 협객을 처단한 것이 정말인 것인지 묻는다. 여기서부터 진시황과 무명 간의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된다. 황제가 묻는 말에 무명은 적절히 대답한다. 그럴 때마다 황제는 의심을 조금씩 풀어간다.
황제와 무명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폭을 넓혀 간다. 처음에는 실제로 무명이 자객을 죽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으나, 차차 황제가 자신이 왜 옆의 다른 나라를 정벌하는지, 그리고 왜 학정을 펴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목숨을 자객으로부터 지켜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황제는 점차 무명을 믿으며 무명에게 70보 앞으로, 50보 앞으로, 30보 앞으로 다가오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황제의 의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무명은 황제가 묻거나 의문을 가지는 점에 대해 빠짐없이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침내 황제를 암살할 수 있는 10보 이내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무명은 진시황의 암살을 포기한다. 그와의 오랜 대화 끝에 진시황이 다른 나라를 정벌하는 이유, 그리고 진시황의 폭정의 이유 등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한 역사의 흐름으로서, 자신이 암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 흐름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다.
진시황은 무명을 가까운 곳에 끌어 앉힐 때 이미 그가 자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무명과 오랜 대화 끝에 무명 만이 오직 자기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점을 알았다. 무명도 자신이 자객인 것을 인정한다. 진시황은 자신의 보검을 무명에게 건네면서 자신을 죽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칼을 받아 든 무명은 진시황을 죽이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는 진시황의 군대에 체포된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무명을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수많은 신하의 간언으로 어쩔 수 없이 무명을 죽인다. 그 대신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줌으로써 그의 의기(義氣)를 진심으로 기리도록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연걸, 진도명, 견자단,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등 중국의 톱스타들이 출연하였다. 이 가운데 무명(이연걸)과 진시황(진도명)의 팽팽한 긴장감 속의 대화는 압권이다. 그뿐만 아니라 몇 번의 전투 장면은 지금까지의 홍콩영화는 물론 웬만한 서구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압도적인 스케일과 영상미를 자랑한다.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