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반 무렵부터 유럽인들이 일본으로 들어오게 된다. 선교사를 필두로 여러 상인들이 일본에 진출하여 무역을 시작하였고, 그들은 유럽과 동남아 및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을 일본에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그 당시 일본은 세계 최대의 은 생산국이었다.
16세기 유럽 국가의 아시아 진출은 거의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마젤란과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등 걸출한 탐험가들에 의해 유럽에서 동양으로 가는 항로 지도를 만들었다. 당시의 취약한 선박 기술로서는 해로를 모르는 채 항해에 나선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 항로 지도를 “국가 비밀”로 하여, 외부로 새 나가지 않게 극도의 보안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새어나가지 않는 비밀은 없는 법, 네덜란드와 영국은 갖은 수단과 돈, 회유를 통해 이 항로 지도를 조금씩 빼돌렸다. 아마 이것이 서양 최초의 산업스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쇼군 SHOGUN>은 제임스 러크벨의 소설 <Shōgun>을 원작으로 하여 미국 NBC에서 제작한 TV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당시 대히트를 쳐서 극장 영화로 재편집되기도 하고,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방영되었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인 윌리엄 아담스(미우라 안진, 三浦按針)를 모델로 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많은 부분은 픽션이다.
1598년 네덜란드 상선 <에라스뮈스 호>는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독점하고 있던 일본과 무역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항해한다. 여기에는 영국인 제임스 아담스가 항해사로서 승선하고 있는데, 항해사는 선장 다음으로 높은 지위이다. <에라스뮈스 호>는 남미의 마젤란 해협을 거쳐 태평양을 횡단하여 일본으로 향하는데, 이미 오랜 항해로 배에는 전염병이 돌며 선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일본을 조금 앞두고 불어닥친 폭풍으로 <에라스뮈스 호>는 조난당하여 일본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조그만 어촌에 표류한다.
일본인들에게 구조된 아담스 일행은 그 지역 영주인 야베(矢部)에 넘겨지고, 그 가운데 아담스만이 야베가 모시는 도라나가(虎長)에게 넘겨진다. 아담스는 그가 항해사란 직업으로 인해 안진(按針)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된다. 안진(按針, 안침)이란 “자석을 이용하여 배의 항로를 결정하는 일”을 말한다. 도라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델로 한 것 같다. 도라나가는 이시토(石堂)와 함께 일본에서 쌍벽을 이루는 2대 권력자인데, 힘에서는 이시토가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시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안진은 도라나가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위엄에 이끌려 그의 신하가 된다. 안진은 도라나가에게 유럽의 정세와 서양의 문명,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검은 음모를 도라나가에게 들려주면서, 일본은 영국과 네덜란드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 사이에 아름다운 일본인 여성 마리꼬가 통역을 맡는다. 안진과 마리꼬는 점점 가까워지며, 또 안진은 마리꼬를 통해 일본말과 풍습도 익혀나간다.
안진은 도라나가를 죽이려는 이시토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도라나가의 목숨을 구해준다. 도라나가도 점점 안진을 신뢰하여 그를 중용한다. 마침내 안진은 도라나가로부터 2천 석의 영지와 부하 200명을 거느리는 하타모토(旗本)로 출세한다. 하타모토란 자기의 영지를 가지며, 군에서는 독립된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를 말한다. 한편 오사카 성에 가서 도라나가의 가족들을 빼오려는 안진 일행은 이시토의 함정에 빠져, 이 와중에서 마리꼬는 죽고 만다.
이러한 가운데 토라나가와 이시토의 대립은 격화되어 두 세력은 마침내 세키가하라(関が原)에서 대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 싸움에서 도라나가는 대승을 거두고 이시토를 포로로 잡는다. 그리고 나가도라는 이시도를 목만 내놓은 채 땅에 묻어 7일 동안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밟게 하여 죽인다. 도라나가는 마침내 쇼군이 되고, 안진은 도라나가의 신하로서 일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든 일본 역사 드라마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증 등에 세심한 배려를 하여 일본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일본의 옛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다만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서는 이 이야기가 픽션인 만큼 실제 역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 드라마 안에서도 도라나가와 이시토의 싸움에서 스토리 전개가 억지스러운 점도 제법 발견된다.
죽음과 관련한 일본의 풍습을 지나치게 왜곡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야베는 안진 일행을 성에 끌고 와서는 별 일도 아닌데 선원 한 명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인다. 그리고 안진의 집안일을 돕는 노인은 안진이 처마에 걸어놓은 죽은 꿩이 썩는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안진의 명령을 받지 않고 이를 치우고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스스로 자살한다. 이 외에도 별것도 아닌 일에 무사들이 절복(切腹, 셋뿌쿠)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 왜곡이라 하여 많은 일본인들이 비난을 하였다.
또 하나, 사소한 점으로는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진이 사랑하였던 통역사의 이름이 “마리꼬”란 것도 조금 거슬린다. 사실 그 시대에는 여자 이름으로서 마리꼬란 이름은 매우 생소하다. 그 시대에도 마리꼬란 이름을 붙이지 말란 법은 없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이름을 붙이는 시대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은지”니, “소영”이니, “지우”니 하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