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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an 20. 2022

영화: 샤라쿠(写楽)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져 간 천재 인물화가(人物畫家) 이야기

이전에 이곳에서 <호쿠사이망가>(北斎漫画, 북제만화)라는 일본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그 영화는 18-19세기에 활약하였던 일본의 천재 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일생을 그린 영화였다. 호쿠사이는 주로 풍속화를 그렸는데, 호쿠사이가 활약하던 시대에 인물화로 이름을 떨쳤던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 写楽)라는 화가였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뛰어난 인물 화가로 나타나서 불과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45점의 작품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 수수께끼의 화가였다. 



독일인 미술평론가인 쿠르트는 <샤라쿠>란 책을 발간하였는데, 그는 이 책에서 샤라쿠를 렘브란트와 베라스케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초상화가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쿠르트가 직접 그런 글을 썼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여하튼 샤락쿠는 인물화로서는 일본에서 역대 최고의 평가를 받는 화가이다. 


영화 <샤라쿠>(写楽)는 1995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로서,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 写楽)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샤라쿠에 관한 연구로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후랑크 사카이(본명은 사카이 마사토시(堺正俊))가 이 영화의 제작을 총지휘하고 또 스스로 이 영화의 중요 등장인물인 판화 업자 쯔타야 쥬사브로(蔦屋重三郎)역을 연기하였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18세기 말인 1790년경 연극 무대를 지휘하고 있던 대도예인(大道芸人)의 우두머리인 오칸은 무대 잡일을 하는 쥬로베에(十郎兵衛)가 사다리에 발을 찍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도예(大道藝)란 길거리나 가설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집단을 말한다. 쥬로베에는 더 이상 대도예의 일은 못하게 되고, 오칸의 무리들과 함께 요시와라(吉原)의 유곽 한쪽에 나타나서 자잘한 장사를 하거나 가부키 공연장에 드나들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도와주곤 하였다. 요시와라란(吉原)란 에도, 즉 지금의 동경의 공창(公娼) 지역이었다. 

쯔타야 쥬사브로(蔦屋重三郎)은 목판화를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가 판매한 판화가 문제가 되어 잠시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나왔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목판화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로 찾은 것이 배우들의 그림을 그려 파는 일이었다. 그는 그림 그리는 작업을 카츠시카 호쿠사이 등에게 맡긴다. 어느 날 호쿠사이가 이름도 없는 사내가 그렸다는 그림을 쯔타야에게 가져온다. 잘 그리지는 않았지만 넘쳐흐르는 독기에 매력을 느낀 쯔타야는 그 그림을 그린 쥬로베에를 찾아 배우 그림을 그리도록 설득한다. 이리하여 수수께끼의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写楽)가 탄생하게 된다. 샤라쿠는 세간으로부터 그리고 배우들로부터 반감을 사면서도 인물화가로서 일세를 풍미한다. 


그런데 샤라쿠가 당시 최고의 인물화가로 평가받으면서도 왜 배우들이나 일반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감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고객의 비위를 잘 맞춰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인물화가들은 의뢰인들의 비위를 맞춰 잘 생긴 얼굴로 그려주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뽀샵을 해주었다는 것인데, 샤라쿠는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물의 얼굴의 특징을 강조하고나 나아가서는 과장하기까지 하였으므로, 그림의 당사자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샤라쿠의 그림들

이 당시 인물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서 키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麿)란 화가가 있었다. 그는 당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우타마로는 자기가 아끼는 요시와라의 오이란(花魁, 지위가 높은 게이샤)인 하나사토(花里)와 다른 화가들이 샤라쿠를 좋아하게 되자 질투심이 불타오른다. 그리고 두 사람을 에도에서 추방하려고 획책한다. 에도를 도망쳐 나온 둘은 곧 추격대에 붙잡혀 샤라쿠는 고문을 받고, 하나사토는 저잣거리의 싸구려 창가(娼家)에 팔려가 버린다. 세월이 지난 후 쯔타야의 장례식이 있는 날, 화려한 행렬을 바라보는 구경꾼들 속에는 우타마로와 테츠죠(호쿠사이), 그리고 대도예인으로 돌아간 쥬로베의 모습이 보인다. 


1790년을 전후한 시기는 일본에서 뛰어난 화가들이 많이 활약하던 시대였다. 비록 영화 속이긴 하지만, 이 시대를 풍미하였던 여러 화가들을 한 번에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였다. 다만 자막이 없어서 중간중간에 내용을 잘 연결시킬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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