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Feb 03. 2022

영화: 실미도

정권의 음모에 놀아난 특수부대의 비극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도 끝나갈 8월 말 무렵, 갑자기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무장공비 침투사건 기사가 떴다. 인천 부근에 상륙한 무장공비들이 검경과 전투 중이라는 기사였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1968년 1.21 사태로 서울에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 그해 가을에는 울진, 삼척 지역에 120명 정도의 대규모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 들어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잠잠하던 차에 서울을 목전에 둔 인천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이들이 서울 인근에서 검경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하니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아니고, 우리나라 특수부대에 의한 난동 사건이라는 후속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서해안 어느 섬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있는 부대가 무장한 채로 집단 탈영하여 서울로 들어오려 하고 있고, 이를 막아선 검경과 약간의 교전을 거친 후 모두 자폭하여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지금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야말로 정권이 흔들거릴 정도로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시대로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는 상황이었고, 또 야당도 탄압으로 인해 지리멸렬한 상태였으므로 이 사건은 유야무야 종결되고 사건의 진상은 파묻혀졌다. 


이 사건의 내막은 이러하였다.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1.21 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려 한 계획이 마련되었다. 이를 위하여 범죄자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서해에 있는 실미도에서 이들에게 지옥훈련을 시켰는데, 이들이 인간이하의 대우와 지독한 훈련, 그리고 학대를 참지 못하여 그들을 감시하고 훈련시키던 기간병을 살해하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탈주 특수부대원들은 대부분 자폭하고, 체포된 4인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상은 여러 점에서 아직 미궁에 빠져있다. 

당시 실미도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들

영화 <실미도>는 실미도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로서, 2003년에 개봉되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에게 어떤 군인이 찾아와 나라를 위해 싸우면 석방시켜주겠다는 제의를 받는다. 그렇게 하여 약 40인의 죄수들은 서해의 실미도란 섬으로 이송되어 특수훈련을 받게 된다. 이들을 찾아온 군인은 김재현 준위(안성기)로서, 그는 청와대가 무장공비의 공격을 받을 뻔한 사건을 알려주고, 그 보복으로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을 따올 계획을 설명하고, 이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고 그 훈련을 이곳 실미도에서 하게 되었다는 계획을 알려준다. 


실미도에 모인 특수부대는 그야말로 지옥훈련에 들어간다. 혹독한 훈련 과장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그러나 최강의 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에게는 조금의 인정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훈련을 마치면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죽이고 돌아와 나라에 대한 공로로 편히 살 것을 꿈꾸며 혹독한 훈련을 묵묵히 견디며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훈련을 하면서 이들은 그들에게 혹독한 대우를 하는 기간병들과도 인간적인 교감을 가지게 된다. 


마침내 훈련은 끝나고 북한 침투 명령이 떨어졌다. 부대원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바다에서 북한을 향해 침투형 보트를 힘차게 노 젓고 있다. 이때 아군 선박이 와서는 침투를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린다. 특수부대원들은 계속 침투를 하겠다고 우기지만, 결국 명령에 복종하여 귀환하고 만다. 1971년에 들어 남북한 간 화해무드가 형성되면서 이 작전을 주도하던 중앙정보부가 북한침투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중앙정보부 고위관리는 특수부대 관리자인 김재현 준위를 불러 들여 이 작전을 포기함과 아울러, 특수부대원 전원을 사살하라고 한다. 특수부대원을 사살하기로 한 날, 이 일을 특수부대원들이 눈치채고 이들은 오히려 기간병들에게 역습하여 기관병들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한다. 그리고 서울로 진입하려 하면서 군경에 저지되어 자폭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실미도 사건의 진상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이 영화가 어디까지 사실과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미도 사건을 테마로 한 픽션이므로, 그 내용이 꼭 사실과 일치하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실미도 사건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또 영화화하는 데에는 감독의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영화 <실미도>가 실제의 실미도 사건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고, 나름대로 그 의문과 그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1. 영화에서는 실미도의 관리자인 김재현 준위가 수시로 중앙정보부의 고위관리와 해군의 고위 장성과 만나 부대 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는 그런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중앙정보부 고위관리나 해군 장성이 장교도 아닌 준위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고 하는 일이 있을 리 없다. 계통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김재현 준위는 누구의 명령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명령을 따르는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2. 영화에서는 특수부대를 해산하면서 그 요원들을 전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특수부대원들은 그것을 알고 반란을 꾀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요원들을 전원 사살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3. 영화에서는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는 기간병들이 생명을 건 작전을 수행할 특수부대원들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키며, 특수부대원들도 이것을 이해하여 서로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도 믿기 어렵다. 기간병들은 그냥 악독한 감시자였을 것이고, 인간이하 취급을 받는 특수부대원들도 기간병들과 어떤 우정이라 할까 인간적 교감을 가졌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 생각한다. 특수부대원들은 기간병을 증오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4. 특수부대원들은 애국심에 충만하여 평양에 침투하라는 명령의 철회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이것도 믿기 어렵다. 그들이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5. 영화에서 특수부대원들이 탈출한 것은 사살 명령에 대한 반감에서라고 하는데, 이것도 믿기 어렵다. 나는 그들의 탈출이 인간 이하의 대우, 가혹한 훈련과 학대에 대한 본능적 반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가로수의 합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