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Feb 05. 2022

영화: 아이스케키

어릴 적 옛 생각이 나는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

요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는 조폭물이나 범죄물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은 보기에는 재미있지만 그 내용이 대부분 극단적인 갈등을 다룬 것이라 보고 난 뒤에 뒷 여운이 깨끗하지 못하다. 최근에 감상한 영화 <아이스케키>는 어릴 적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훈훈한 가족 이야기이다. 약간의 멜로적인 성격도 있지만 여하튼 오랜만에 보는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 인정 이야기이다. 


영화 <아이스케키>는 2006년에 제작되었다. 시대 배경은 1969년이니까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이다. 전라도 어느 조그만 항구 마을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영래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밀수 화장품을 판매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영래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애비없는 자식”이라 놀림을 받지만 결코 기가 죽지 않는다. 엄마는 밀수 화장품 장사를 하면서 허구한 날 싸움질이다. 영래는 엄마가 너무 좋지만 싸움만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영래 엄마는 싸움 때문에 경찰 단속에 걸려 팔러 다니던 화장품을 빼앗기기도 하고, 벌금을 물기도 한다. 


영래 엄마인 친구인 춘자 아줌마는 허구한 날 영래 엄마와 싸우지만, 그래도 속 정은 깊다. 젊은 시절 춘자와 영래 엄마는 함께 서울에 취직하러 갔다가 춘자는 질 나쁜 남자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영래 엄마는 “서울대 학생”과 연애를 하여 영래를 낳았다. 영래 엄마는 웬일인지 영래 아빠와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영래만을 데리고 고향마을로 내려와 화장품 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영래 엄마를 보고 춘자는 항상 “얼굴 반반한 년은 대학생하고 연해하고, 자기는 한심한 놈과 사귀었다”라고 푸념이다.

어느 날 영래는 춘자로부터 아버지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영래의 둘도 없는 친구 송수는 고아로서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다. 송수는 오랫동안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와서 장사에 능숙하다. 영래는 송수의 도움을 받아 아이스케키 장사로 서울 갈 차비를 모은다. 그러나 아이스케키 장사는 쉽지 않다. 고아 송수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여 모은 돈으로 새 신발을 사는 게 소원이다. 그런 송수가 어느 날 기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송수는 이젠 자기는 신발이 필요 없으므로 영래가 서울 갈 차표를 사라고 그동안 모은 돈을 영래에게 준다. 


아버지 집 주소를 알아낸 영래는 기차를 타고 아버지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서는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한 영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일을 알게 된 영래 엄마는 서울로 편지를 보낸다. 어느 날 영래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오고, 영래가 본 그날의 장례식은 영래 할아버지의 장례라고 하였다. 영래 아버지는 그동안 영래 엄마와 영래를 찾아다녔지만 어디 사는지를 몰라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손을 잡은 영래는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영래 엄마는 영래 아버지에게 영래 손을 잡고 온 마을을 한번 돌아주라고 한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받던 영래는 아버지 손을 잡고 가슴을 펴고 온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영래 가족은 함께 서울로 떠난다.  

이 영화는 소재는 눈물을 끄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코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비록 형편이 어렵지만 모두 당당하게 산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받아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영래, 그리고 화장품 외상값 때문에 늘상 싸우고 파출소에 붙들려가는 영래 엄마도 항상 당당하다. 그리고 영래의 친구인 고아 송수도 늘 슬픈 눈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간다. 기차 사고로 다리를 잃고도 이젠 신발이 필요 없으니 그동안 신발 사려고 모은 돈을 영래에게 주는 착한 마음을 가졌다. 


오랜만에 보는 가슴 찡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옛 시골 도시의 풍경이 정겹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때까지도 아이스케키가 여름에 성했던 모양이다. 나는 대구시에서 자랐는데, 초등학교 다닐 무렵 그러니까 1965년 정도까지는 대구에서도 여름에는 온통 아이스케키 장사들이었다. 커다란 아이스케키 통에다 뺑뺑이를 갖고 다니며, 1원이나 2원을 내고 뺑뺑이를 찍으면 찍힌 숫자만큼 아이스케키를 주는 그런 아이스케키 장사를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간 1967년 경부터는 아이스케키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스케키 대신 좀 더 고급인 <하드 아이스크림>이라는 지금의 아이스 바와 같은 얼음과자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9년이면 아이스케키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좋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 작은 항구도시는 시골이라 그때까지 아이스케키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비바 장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