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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06. 2022

영화: 정염(情炎)

일본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현대 영미문학에서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가 1928년에 쓴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은 상당히 외설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다. 나는 대학교 시절 이를 영어 원서로 읽었는데,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외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소설이다. 아주 일부 장면에서 성적인 묘사가 나오는데, 이로 인해 한 때 미국에서는 이를 외설적이라 하여 판매금지 처분을 한 것은 물론, 미국으로의 수입도 금지하였다. 가끔 미국 영화를 보면 이 소설을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오다 세관에서 적발되어 곤욕을 치르는 장면들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화일 것이다. 


로렌스는 자연주의적인 작가이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찬양하였고, 당시의 공업화로 병들어가는 영국의 환경을 한탄하였다. 그래서 그는 소설은 대부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생명력을 찬양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잉글런드 마이 잉글런드>(England My England)의 경우 산업화로 황폐해져 가는 영국의 자연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소설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영어로 읽어보면 생동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힘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로렌스는 인간의 성적 행위를 자연과 생명의 중요한 한 단면으로 생각하였으며, 채털리 부인이 추구한 성적 선택은 자연과 생명에의 찬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염>(情炎)은 1964년 일본에서 제작된 흑백영화이다. 스토리와 내용은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는 비슷한 점이 없지만, 영화 전체에서 느끼는 느낌은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털리 부인의 경우 에로스적인 사랑을 택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오리꼬(織子)는 플라토닉 러브를 택한다. 


오리꼬(織子)와 다카시(隆志)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파탄에 빠졌다. 증권회사의 사장인 다카시가 오리꼬와 결혼한 것은 단지 그녀의 미모를 대외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다카시는 애인이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 가마쿠라에 있는 자택에 돌아올 뿐이다. 오리꼬는 남편의 여동생인 유코(悠子)와 둘이서 살고 있다. 

5월 어느 날 오리꼬는 절에서 열리는 옛시 모임에서 조각가 노토(能登)를 만난다. 노토는 죽은 오리꼬의 어머니 시게꼬(繁子)의 정인(情人)이었다. 오리꼬는 남자관계에서 자유분방하였던 어머니 시게꼬를 싫어하였으며, 그녀의 정인인 노토도 매우 미워하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만난 노토에게는 어떤 반가움을 느낀다. 어느 날 유코가 친구들을 불러 연 파티가 끝난 후 해변에서 드라이브를 하던 오리꼬는 어느 오두막집에서 막노동자와 정사를 즐기는 유코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격렬한 성적 충동을 느낀 오리꼬는 며칠 후 그 막노동자에게 몸을 맡긴다. 


그러나 오리코는 육체적 만족과는 반대로 자신도 어머니처럼 타락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심한 자기혐오에 빠진다. 며칠 후 오리꼬는 노토의 작업장을 찾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는다. 노토는 다카시와 헤어지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그 후 종종 오리꼬는 노토와 만나지만 결코 육체적인 관계는 갖지 않는다. 오리코는 다케시에게 이혼을 요구하나 다케시는 오리꼬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도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리꼬의 상대가 막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결국은 이혼에 동의한다. 


노토는 작업 중 바위에 깔려 하반신에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성불구자가 된다. 그렇지만 오리꼬는 그 사실을 알고도 평생 다케시와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 서로 정신적으로 교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노토와의 생활이야 말로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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