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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19. 2022

영화: 요도 이야기・화려한 요시와라 100인 베기

기생과 악덕 포주에 속은 순정남(純情男)의 복수극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유곽(遊廓)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곽은 국가가 인정한 일종의 공창(公娼) 지역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옛날 한양이나 평양 등 큰 도시에는 기생집이 번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러한 기생집들이 특정한 지역에 몰려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江戶), 즉 지금의 동경에 막부를 개설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에도로 모여들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무사들, 그리고 지방에서 온 수많은 다이묘와 그 식솔들, 에도 신도시 건설로 생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서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낭인들 등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에도에 모여들다 보니까 인구의 남녀 간의 균형이 크게 깨어졌다. 당시 에도의 남녀 비율이 3:2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에도 여기저기에 술과 매춘업을 하는 환락가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장사는 모두 불법이었으므로 공권력에 의한 단속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들 유흥업자들은 막부에 자신들의 장사를 합법화해주도록 지속적으로 탄원하였고, 결국 막부는 이들이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을 내려 그를 준수하도록 함과 아울러, 매년 막대한 상납금을 바치는 조건으로 이를 합법화하였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중심지인 긴자(銀座)의 닌교쵸(人形町) 근처에 유곽 지대를 만들고, 그 거리 이름을 요시와라(吉原)로 하였다. 요시와라는 그 후 대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위치를 아사쿠사(浅草)로 이전하여, 근대까지 내려왔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풍속 업소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러한 유곽은 과거 에도뿐만 아니라 교토, 오사카 등 큰 도시에는 대개 몇 개씩은 있었다고 한다.


영화 <요도(妖刀) 이야기・화려한 요시와라(吉原)의 100인 베기>(妖刀物語ㆍ花の吉原百人斬り)는 요시와라를 배경으로 기생집의 주인과 기생에게 속은 순정파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이야기로서, 1960년에 제작되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歌舞伎)에서 오랫동안 공연되어 온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요도(妖刀)란 요사스러운 귀기(鬼氣)가 서린 칼을 의미하는 것으로, 명검(名劍)과는 종이의 앞뒷면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일본에는 유명한 요도가 몇 개 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졌던 무라마사(村正)란 이름의 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와 처, 그리고 장남이 바로 이 무라마사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요도(妖刀)라고 불렸다.


주인공 지로사에몬(次郎左衛門)은 아주 올곧은 상인으로서 에도(江戸) 근처의 시골에서 큰 비단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얼굴에 큰 얼룩이 있어 여자들이 가까이 오지 않아 나이가 들어서도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그때 마침 에도에 있는 거래처 사장이 좋은 여자를 소개할 테니 선을 보러 에도로 오라고 한다. 선을 보았으나 여자의 반응은 신통찮았고, 중매자인 거래처 사장은 기분풀이 겸 요시와라에 놀러 가자고 권유한다.


이들 일행은 요시와라의 화려한 기생집에 찾아갔으나, 기생들은 아무도 지로사에몬 옆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기생집 주인은 찾다 못해 그 기생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내고 있는 초보 기생 타마쯔루(玉鶴)에게 지로사에몬 옆에 앉으라 하자 그녀는 기꺼이 승낙한다. 지로사에몬이 그녀에게 얼굴의 얼룩이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얼굴에 얼룩이 있지, 마음에 얼룩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지로사에몬은 그녀에게 푹 빠지고 만다.


이후 지로사에몬은 기생집에 눌러살다 시 피하며 돈을 물 쓰듯이 쓴다. 그러던 중 지로사에몬의 고향에 우박이 내려 뽕잎이 전부 떨어지는 바람에 비단 공장을 돌릴 수가 없어 사업이 큰 위기에 빠진다. 밀린 외상값을 한꺼번에 갚을 수 없게 된 지로사에몬이 기생집 주인에게 지불기간을 좀 연기해 달라고 하자 그때까지 친절하고 사근사근하던 기생집 주인은 안면을 싹 바꾼다. 그리고 지로사에몬을 모욕하고 조롱한다. 그뿐만 아니라 철석같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은 타마쯔루까지도 지로사에몬이 돈이 떨어진 것을 알자 매몰차게 그를 거부하고 조롱한다. 그는 기생집과 요시와라에서 놀림감이 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타마쯔루는 그동안 지로사에몬의 금전적 지원에 힘입어 게이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타유(太夫)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타유란 요시와라의 유곽에서 단 한 명 밖에 없는, 게이샤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이다. 타마쯔루는 타유의 자리에 오르고 난 후 관례대로 요시와라 거리에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인다. 이때 지로사에몬은 대대로 집안에서 보관해왔던 요도(妖刀) <무라마사>(村正)를 꺼내 들고 와 대낮에 요시와라 큰길에서 닥치는 대로 칼부림을 벌인다. 그동안 자기를 조롱해왔던 기생집 주인과 그 직원들, 그리고 자신을 속인 타마쯔루를 죽이고, 그의 행동을 막으려는 요시와라의 경비원들을 닥치는 대로 찌르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남자의 순정을 짓밟고 조롱한 환락가의 악덕 점주와 기생에 대한 복수극이다. 일본 가부키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이야기이므로 스토리는 무난하다. 그보다는 이 영화에서 에도시대 화려한 일본의 환락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재미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게이샤(芸者)들의 생활과 그 사회의 구조도 흥미롭다.


나중에 타유(太夫)라는 게이샤의 최고 지위는 “오이란”(花魁)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 영화로서 <사쿠란>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바로 환락가에 들어선 어린 소녀가 오이란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요도이야기ㆍ화려한 요시와라의 100인 베기>의 시대 배경은 언제쯤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타유”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아마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독특한 소재의 영화로서, 재미있게 보았으나, 사건 전개가 너무 느려 좀 지루하게 느껴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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