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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06. 2022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전쟁의 선봉에 선 전쟁 반대론자

일본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태평양전쟁 70년째의 진실>은 태평양 전쟁의 출발점이 되는 일본의 진주만 침공의 총사령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야마모토 이로소쿠는 미국과 일본의 현격한 국력 차이로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일본이 질 수밖에 없다고 줄기차기 주장하지만, 군 지휘부에서 대미 전쟁을 결정하고, 그를 진주만 침공의 주역인 연합함대의 사령장관으로 임명하자 어쩔 수 없이 진주만 기습을 총지휘한다. 


영화 감상평에 앞서 먼저 야마모토 이소로쿠란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일본 해군 소속의 군인으로서 최종 계급은 원수 해군대장이면서, 두 번에 걸쳐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지냈다. 그는 당시로서 군인으로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하게 된다. 그는 2년간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머리가 매우 명석하여 성적도 뛰어났고, 또 포커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이후 또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기도 하여 미국의 사정에 매우 밝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는 독일ㆍ이태리ㆍ일본의 삼국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 이에 대한 신중론자도 있었으며, 특히 일본 육군이 삼국동맹의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포함한 해군 측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강하였다. 그러나 독일이 드디어 유럽에서 침략전쟁을 시작하고, 이태리도 이에 가담하여 승승장구함에 따라 일본에서도 삼국동맹 체결의 여론이 높아졌다. 드디어 일본도 삼국동맹을 맺고,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2차례에 걸친 미국 유학과 주미 대사관 경력으로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잘 아는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자신들의 군사력을 과신한 일본군 지휘부에 의해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그를 미국 침공의 최전선인 연합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2011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해군 부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는 중일 전쟁에서의 잇달은 승리,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의 거침없는 진격으로 온 국가가 승리의 환희에 들떠있었다. 이러한 승리는 일본인들의 자기네들의 군사력이 천하무적이라고 믿었고, 따라서 어떤 국가와 전쟁을 치르더라도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때마침 대두되기 시작한 독일 및 이탈리와와의 삼국동맹을 체결하여, 거대한 일본제국을 건설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해군 부장관에 임명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 전쟁을 해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여, 전쟁을 반대하며, 삼국동맹의 체결도 반대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국내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며, 급진 우익세력으로부터 암살의 위협까지 받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위협이 커지자 해군 지휘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격리된 연합함대의 사령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곧이어 독일과 이태리의 유럽 침공이 본격화되자 일본은 삼국동맹을 체결하고,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미국과의 전쟁을 결정하자, 해군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이끄는 연합함대에게 진주만을 침공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는 함대를 출발하면서 반드시 공격 전에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인다. 미국 해군의 감시를 피해 진주만을 급습한 연합함대는 진주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그렇지만 몇 척의 미국 항공모함과 전함은 당시 진주만에 기착해 있지 않아 공격의 피해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도 공습이 끝난 후에 미국에 통고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패전의 예감을 느낀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미국 해군은 몇 개월 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를 대파한다. 이를 계기로 전황은 급격히 기울어진다. 태평양 여러 섬에서 일본군의 패퇴가 시작되고, 일본 해군의 행동반경도 급격히 축소된다. 일본이 핀치에 몰린 상황에서 필리핀 부근에 비행기로 전황 시찰에 나선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군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로서는 이때 전사한 것이 개인적으로 볼 때는 그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태평양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지금도 일본에서 마치 군신(軍神)처럼 추앙받고 있다. 만약 그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그는 전범(戰犯)으로 처형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영화를 보면 또 국가주의에 중독된 편향된 여론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느낄 수 있다. 평범한 국민들이 정부에 의해 조작된 뉴스에서 전하는 소식을 듣고 전쟁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집단적인 광기(狂氣)를 보인다.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군대와 군국주의 일본군의 비교이다. 잘 아시다시피 5.16이나 12.12로 정권을 찬탈한 우리나라 정치군인들은 국민들에게 잔인하고 난폭한 짓을 서슴지 않았으며, 걸핏하면 권총을 뽑아 상대를 위협하는 안하무인격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일본군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범하긴 했으나 국내에서의 행동거지는 매우 젠틀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이 당시에는 군 고위간부들은 그 시대로서는 보기 드물게 높은 교육을 받아 생활도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자세나 행동거지를 보인 것으로 영화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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