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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01. 2022

영화: 칠삭동이의 설중매

계유정난을 성공적으로 이끈 지략가 한명회의 일대기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癸酉靖難)은 인기 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로서 그동안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가 이를 다루었다. 특히 1984-85년에 방영된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는 무려 105회에 걸친 드라마로서, 조선왕조 드라마 시리즈에서 가장 드라마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에서 한명회 역을 맡은 정진은 그동안 단역을 주로 맡아 그다지 눈에 띄는 탤런트가 아니었으나, 이 드라마에서 혼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후에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기도 하였다.


영화 <칠삭동이의 설중매(雪中梅)>는 1988년에 제작되었는데,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를 압축해 놓은 듯한 영화였다. 다만 TV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은 세조와 그의 부인인 인수대비라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한명회가 주인공인 셈이다. 신성일이 세조 역을, 그리고 한명회 역을 정진이 맡고 있다. TV 드라마 설중매는 장장 100시간에 걸친 드라마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2시간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낭인 시절의 한명회, 그리고 한명회와 정난정의 만남, 계유정난, 세조 암살 미수 사건, 사육신, 금성대군의 죽음, 단종의 유배와 죽음 등의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 하였기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극적 완성도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 제목의 설중매(雪中梅)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드라마를 볼 때는 세조의 부인인 인수대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명회의 첩인 정난정의 극 중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사극 정치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인정하기에는 아무래도 약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정난정의 존재감이 약하다. 한명회가 정난정을 데리고 온 후, 그녀를 도로 빼앗으려는 금성대군의 수하들과의 다툼에서 조금 등장할 뿐 그 이후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칠삭동이”란 한명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칠삭동이의 설중매”라 하였느니, “한명회의 설중매” 즉 정난정을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인수대비도 마찬가지이다. 계유정난을 모의할 때 잠깐 등장할 뿐 그 이후로는 거의 등장 않는다. 


그러면 한명회가 설중매? 에이, 그건 아니다. 한명회와 설중매의 이미지가 맞을 리가 없다. 설중매란 아무래도 여성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그 시대의 주역인 여성이라면 인수대비와 정난정 외에는 달리 생각할 인물이 없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을 “설중매”라 붙였을까? 아무래도 그 당시 보기 느물게 높은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설중매>의 인기를 업고 흥행을 노리는 얄팍한 상술 이외에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여하튼 영화 <칠삭동이의 설중매>는 드라마와는 달리 완전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극적인 사건들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단순히 늘어놓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영화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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