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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22. 2022

영화: 최후의 증인

빨치산 토벌에서부터 시작된 악의 뿌리

영화 <최후의 증인>은 작가 김성종이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950년대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역사의 비극의 전말을 사건 담당 형사의 눈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이 요즘 출간되었다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이고, 영화화된 것은 1980년이다. 바로 유신독재와 신군부 독재가 이어지던 시기에 이 작품이 소설로 쓰여졌고, 또 영화화되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서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이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빨치산 토벌에 앞장선 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1980년 초에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다른 영화사들의 모함으로 청와대에 투서가 들어가는 바람에 ‘빨갱이 영화’라는 딱지를 단 채 또 한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검열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 당초 2시간 30분 이상 되었던 상영시간 가운데, 40분 정도의 분량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독재정권 하에서는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탄압도 모질게 이루어진다. 


영화 <최후의 증인>은 1980년 이두용 감독에 의해 제작, 개봉되었는데, 하명중, 최불암, 정윤희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문창서에 근무하는 오병호 형사(하명중 분)는 서장의 명령으로 변호사 김종엽과 양조장 사장인 양달수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서장이 오병호 형사에게 이 사건을 맡긴 것은, 이 사건이 구역 내에서 중대 사건이었고, 오병호 형사는 문창 경찰서의 형사 가운데는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병호 형사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사건이 점점 과거의 6.25 전쟁 와중에서 일어난 빨치산 토벌에서 벌어진 일련의 비극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6.25 당시 빨치산의 강만호 대장은 순박한 황바우(최불암 분)와 공산주의자 한동주를 납치한다. 국군에게 쫓긴 빨치산 부대는 시골의 어느 초등학교의 마루 밑에 은신을 한다. 강만호의 친구인 손석진은 딸 지혜를 강만호에게 부탁하며, 이와 함께 보물을 숨겨둔 지도를 건네주고 죽는다. 빨치산들은 어린 지혜를 윤간하고, 황바우는 이를 막으려 하나 역부족이다. 강만호 대장은 자신이 이끄는 부대 전체를 투항시키고자 마을 청년회장인 양달수와 협의한다. 그러나 빨치산 부대원들은 투항을 거부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빨치산이 죽고만 다. 이 과정에서 황바우는 본의 아니게 한동수를 칼로 찌르고 자수한다. 

지혜(정윤희 분)와 바우는 부부가 되어 보물을 찾는다. 그러나 양달수는 보물과 지혜를 빼앗으려고 실은 죽지 않은 한동주를 죽은 것처럼 한다. 황바우는 한동주 살인범으로 20년의 징역을 살고 김종엽 변호사의 도움으로 출감한다. 그 사이에 손지혜는 양달수의 첩이 되고, 양달수는 보물을 판 돈으로 양조장을 시작한다. 수사를 진행해가던 오 형사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한동주가 살아 있고, 양달수 살인사건과 김중엽 변호사의 살해 범인은 같은 사람이며, 범인은 바로 황바우와 지혜의 아들인 태영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황바우는 아들 태영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가 살인범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으며, 손지혜도 그를 따른다. 


이 영화에서는 빨치산 토벌을 둘러싸고 공산주의자들의 악행도 그려지지만 이와 동시에 당시 소위 우익에 있던 자들의 탐욕적이고 악랄한 행위들이 거침없이 묘사된다. 또 공안 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수감자 가족들을 협박하고 기만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장면도 나온다. 이 영화가 제작될 시기를 생각한다면 이는 웬만한 용기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무대는 겨울이다. 찬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 연탄난로 하나에 추위를 피하는 낡은 사무실 등 영화 전체적으로 차갑고 스산한 분위기가 지배한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이고 우울한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계절감이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진실로 향하는 이야기 전개는 긴박감이 넘친다. 이 영화는 “죽기 전에 보아야 할 100편의 한국영화”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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