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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0. 2022

드라마: 병아리(히욧꼬)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살아가는 상경 시골 소녀

오랜만에 NHK TV 소설을 감상하였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이바라키현(茨城県)의 시골에서 동경으로 올라와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2017년 상반기에 150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1964년의 동경 올림픽 전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바라키 현 북쪽 끝에 있는 산속 마을 오쿠이바라키 촌(奥茨城村)에서 자란 농가의 장녀 야타베 미네꼬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동경 올림픽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일본은 고도성장기에 들어서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고도성장으로 대도시에는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고 수많은 기업이 창립되었다. 기업들은 일할 손이 모자라 사람을 구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도시와는 반대로 대부분 농사를 지어먹고사는 시골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농사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농가에서는 가장들이 농번기 외에는 대도시에 나가서 막노동 등으로 돈을 벌어 살림살이에 충당하였다. 이렇게 도시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일을 일본말로는 “데가세기”(出稼ぎ)라고 한다.     


미네꼬 집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미네꼬와 두 동생으로 모두 여섯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네꼬의 집 주위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미네꼬의 친구 타스카와 도키고(助川時子)와 카도야 미츠오(角谷三男)가 살고 있다. 이 세 집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서로 모두 친하다. 미네꼬 네 집은 쌀농사를 지어먹고살고 있는데, 5년 전 흉년으로 농협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 부족한 생활비와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미네꼬의 아버지 야타베 미노루는 동경에 가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다.


자주 집으로 소식을 전하던 미노루로부터 소식이 끊긴다. 미네꼬의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 동경에 가보니, 아버지 미노루는 행방불명되었다. 미네꼬의 엄마는 경찰에 실종계를 내고 찾아달라고 하였지만 경찰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갑자기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그 당시 일본에서는 “증발인”(蒸發人)이라 불렀는데, 대개는 시골에서 올라와 대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경험하고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네꼬의 친구 도키꼬는 배우가 되기 위해, 그리고 미쯔오는 셋째 아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하였다. 일본도 당시만 하더라도 농가에서는 장남에게 논밭을 모두 상속하고,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미네꼬는 당초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이곳에서 결혼하고 살 계획이었으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동경으로 가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미네꼬와 두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경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취직 열차에 몸을 실은 세 친구는 우에노(上野) 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잠깐 “취직열차”란 무엇일까? 일본의 엔카(演歌) 가운데 <아아! 우에노 역>이라는 노래가 있다. 취직 열차를 타고 동경에 올라와 작은 가게에서 일을 하는 소년이 고향의 엄마 생각을 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나는 취직 열차라길래 동경으로 일하러 오는 시골사람들이 많이 타는 완행열차 같은 값싼 기차인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고 중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면 시골 각지에서 돈 벌러 동경으로 오는 아이들을 위해 일부러 마련한 특별열차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취직 열차에는 취직이 확정된 중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만이 타게 된다.

취직열차와 우에노 역

우에노 역은 우리로 치면 서울 용산역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지금이야 용산역도 화려하게 변모했지만, 옛날에는 특급열차 등 고급열차는 서울역에, 완행열차 등 값싼 열차는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시골에서 서울로 돈 벌러 오는 사람들은 용산역에 많이 내렸다. 용산역은 역사도 매우 초라하였다. 이렇게 우에도 역에 도착하여 아이들은 학교별로 줄을 서 쪼그려 앉아있으면, 이들을 채용한 회사 사람들이 와서 아이들을 각각 데려간다.


노래 <아아! 우에노 역>


ああ上野駅

https://youtu.be/Ulh54h_0sOY

1.

どこかに故郷の 香りをのせて

入る列車の なつかしさ

上野は俺らの 心の駅だ

くじけちゃならない 人生が

あの日ここから 始まった


2.

就職列車に ゆられて着いた

遠いあの夜を 思い出す

上野は俺らの 心の駅だ

配達帰りの 自転車を

とめて聞いてる 国なまり


3.

ホームの時計を 見つめていたら

母の笑顔に なってきた

上野は俺らの 心の駅だ

お店の仕事は 辛いけど

胸にゃでっかい 夢がある


아아! 우에노 역


1.

어딘가에서 고향의 향기를 싣고

들어오는 열차의 그리운 마음

우에노는 우리들의 마음의 역이다

쓰러져선 아니 되는 이 인생이

그날에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2.

취직열차에 흔들리며 도착한

까마득한 그날 밤이 생각이 난다

우에노는 우리들의 마음의 역이다

배달일 돌아오는 자전거를

멈추고 듣고 있다 고향 사투리


3.

홈의 시계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웃는 얼굴로 변해버린다

우에노는 우리들의 마음의 역이다

가게의 바쁜 일은 힘이 들지만

가슴엔 커다란 꿈이 있단다


동경에 온 미네꼬와 두 친구는 각자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일을 위해 열심히 일 한다. 도키꼬는 여러 번 모델 도전에 실패를 하지만 <트위기 닮은꼴 찾기> 행사에서 우승하여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트위기(Twiggy, Lesley Hornby)라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 세계를 풍미하였던 영국의 유명한 패션모델이었다. 트위기가 미니 스커트를 입음으로써 세계적으로 미니 스커트가 대유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츠오는 쌀가게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면서 데릴사위가 되라는 쌀가게 주인과 딸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미네꼬는 양식집인 <스즈부리정>에 취직하여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면서 아버지의 소식을 찾는다.


미네꼬는 동경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나쁜 사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다. 처음에 조금 나쁜 듯 보이는 사람들도 곧 마음을 돌리고 착한 사람이 된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드라마 전체가 너무 그러니까 그것도 좀 식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네꼬는 한 때 케이오(應) 대학의 학생이자 규슈에 있는 재벌가의 후계자인 시마타니 준이치로(島谷純一郎)와 사랑을 하게 된다.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는가 했더니 곧 시마타니는 집안에서 권하는 정략결혼으로 인해 미네꼬의 곁을 떠난다.


미네꼬는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중에서 여배우인 카와모토 세쯔코(川本世津子)를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된다. 미네꼬의 아버지 미노루는 집에 돈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나 머리에 상처를 입고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런 미노루를 세쯔꼬가 구해주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던 것이었다. 여러 곡절 끝에 미노루는 고향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미네꼬는 의욕적인 동경 생활을 계속한다.

도키꼬는 모델이자 배우로 각광을 받게 되고, 미쯔오는 쌀집 딸과 결혼하여 데릴사위가 되어 쌀가게를 잇기로 한다. 미네꼬는 일하고 있는 <스즈부리정>의 보조 요리사인 마에다 히데토시(前田秀俊)와 새로운 사랑을 하고 마지막에는 결혼으로 골인한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돌아간 미네꼬의 아버지 미노루 쌀농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꽃을 재배하는 새로운 농사에 도전한다. 이 외에 미네꼬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은 각자 짝을 찾고, 또 가족과 반목을 하던 사람들은 부모 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드라마는 해피 엔드로 끝난다.


이 드라마는 대략 1963년 말부터 1966년 정도 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사회적 격변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경제성장과 산업의 발전, 생활양식의 변모, 가난한 시골과 취직을 위해 동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동경 생활, 공장 기숙사, 여전히 남아 있는 남존여비 사상, 사회적 갈등, 미니스커드 열풍, 전 일본을 진동시킨 비틀스의 일본 라이브 공연, 동경 올림픽을 둘러싼 사회의 떠들썩한 분위기 등 당시의 일본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이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착한 사람들만 나오고, 모두들 너무나 착한 일들만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좀 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그런데 왜 이 드라마 제목을 <병아리>라고 하였을까? 미네꼬가 일하는 <스즈부리정>의 옆 가게 앞에는 사람 키 정도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아리 모형이 서있다. 미네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병아리에 말을 걸며 다시 용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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