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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6. 2022

영화: 가루지기

옹녀와 변강쇠의 전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 전통소설전집>이라는 5권으로 된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의 옛 소설을 모아놓은 책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소설이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서도 꽤 많은 소설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서는 처음부터 소설로 된 것도 있지만, 판소리 작품 등이 소설로 바뀐 것도 있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고대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소설들이 만들어졌다. 장르도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면 금오신화는 판타지 애정소설이며, 이러한 유형의 소설로는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 여러 편이 있다. <춘향전>, <심청전> 등 잘 알려진 소설 외에도 <유충열전>, <홍계월전>, <박 씨 부인전> 등 군담소설(軍談小說)도 있고, <홍길동전>이나 <전우치전> 등과 같은 모험소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우리나라 고대소설 가운데 눈에 띄는 하나가 있었느니, 바로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것이었다. <가루지기타령>은 <변강쇠 타령>이라고도 하는데, 판소리 물로서 판소리 열두 마당에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랐다. 우리의 옛날 소설에 이런 거의 포르노에 가까운 이야기가 있다니... <가루지기타령>의 대략의 스토리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평안도에 사는 옹녀는 청상 살(靑孀煞)이 끼어 그녀와 관계한 모든 남자는 바로 죽어버린다. 그래서 더 이상 고향에 살 수 없게 된 옹녀는 새 삶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남쪽 삼남에서는 변강쇠란 천하잡놈이 있었는데, 하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니까 마을에서 쫓겨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둘은 개성 근처에 있는 청석관에서 만나 함께 살기로 한다. 둘은 유랑생활을 하다가 인적 없는 남쪽 지리산에 정착을 하게 된다. 하루 종일 일도 않고 빈둥거리는 변강쇠에게 옹녀는 땔감을 마련해오라고 독촉한다. 힘든 나무 베기가 싫은 변강쇠는 나무를 베는 대신 장승을 뽑아와서 장작으로 사용한다. 이에 화가 난 장승들이 변강쇠에게 온갖 병을 주어 변강쇠는 수천 가지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옹녀는 죽은 변강쇠를 지게에 가로로 지고 장사를 지내러 간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이 <가루지기타령>이다. 


영화 <가루지기>는 이 <가루지기타령>을 영화화한 것으로, 1988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 변강쇠 역은 이대근, 옹녀 역은 김문희가 맡았다. 원래 판소리는 행동보다는 노래가 중심이 되는 장르이다. 따라서 가루지기타령의 원래 재미는 그 위트 넘치는 사설(辭說)에 있다. 그런데 이것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 원작이 가진 원래의 “사설의 재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이 영화가 시대 에로물이라는 기치를 건 B급 영화이므로, 그런 걸 요구하기는 무리란 생각도 든다. 


<가루지기타령>도 제작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수준 높은 영화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표피적인 흥미에 초점을 맞춘 싸구려 B급 영화에 지나지 않으므로, 쓸데없는 기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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