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Apr 17. 2022

영화: 계엄령(戒嚴令)

2.26 쿠데타 미수 사건의 사상적 지도자 기타 잇키(北一輝)의 생애

1936년 2월 26일 일본의 육군 청년 장교 등이 1,483명의 군대를 이끌고 수상 관저, 경시청(우리나라의 경찰청), 내무장관 관저, 육군성 참모본부, 육군 장관 관저, 동경 아사히 신문사 등을 점거하였다. 이후 그들은 육군 수뇌부를 통하여 쇼와 천황(昭和天皇)에게 쇼와 유신(昭和維新)을 실현할 것을 호소하였지만, 천황은 격노하여 이를 거부하고는 스스로 근위사단을 이끌고 진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하였다. 이에 이르자 사건 발발 초기에는 청년 장교들에 호의적이었던 육군 수뇌부도 그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것을 결정하고 투항을 권고하였다. 그러자 반란군들 가운데 일부는 자결하고 나머지는 투항하였다. 그리고 그 주모자들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일본 육군에서 뿌리 깊게 내려오던 두 파벌인 황도파(皇道派)와 통 제파(統制派)의 파벌 다툼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황도 파는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 문화를 존중하여야 하며,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하며,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소련을 공격하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통제 파는 당시의 독일의 참모본부 사상에 영향을 받아 중앙 집권화한 경제와 군사계획(총력전 이론), 기술의 근대화와 기계화를 중시하고, 중국 침략 확대를 주장하였다. 사상적으로 보면 황도 파는 극단적 극우주의자, 통제 파는 극우주의자로 보면 타당할 것이다. 2.26 사건은 황도파를 따르는 청년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미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2.26 사건에 사상적 뒷받침을 한 인물이 바로 기타 잇키(北一輝)라는 인물이다. 기타 잇키는 사상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그는 국가사회주의를 설파하였다. 그리고 그는 2.26 사건에서는 황도파 청년 장교들의 이론적 지도자로서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였으며,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영화 <계엄령>(戒嚴令)은 1973년에 제작된 영화로서 기타 잇키를 중심으로 2.26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미 군국주의의 길에 들어선 일본에서, 황도파가 중심이 된 육군 강경파들은 우유부단한 정치가들을 뒤엎고 천황 친정체제의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타 잇키는 이러한 젊은 강경파 장교들을 집으로 불러 그들에게 국가주의적 사상을 주입한다. 그리고는 이러한 국가 주의화에 걸림이 되는 인물에 대해서는 암살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는 거사 자금을 명목으로 대기업을 찾아가 자금을 지원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무작정 앞장서서 쿠데타를 종용한 것은 아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서인지, 청년 장교들을 충동질하면서도 자신이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년 장교들은 그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지령을 원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부추기면서도 결국에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라고 하면서 한 발을 빼곤 한다. 결국 치밀하지 못한 계획으로 거사가 실행되어 청년 장교들이 이끄는 군대는 국회를 점거한다. 그러나 며칠 못가 진압군에 의해 전원 체포되어 주모자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기타 잇키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서 체포되어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는데, 이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가루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