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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20. 2022

영화: 독부(毒婦) 오덴과 사형집행인 아사

강도질로 일본 전국을 떠 돈 여자 강도의 최후

가족을 살해하거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여자를 예로부터 “독부”(毒婦)라 일컬어 왔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 오히려 남자 쪽이 훨씬 더 많을 텐데, 이러한 남자들은 독부(毒夫)나 독남(毒男)이란 말을 쓰지 않고 여자들에 대해서만 독부라 부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것도 남녀 차별인가? 아마 남자들의 악독한 범죄는 많았지만, 여자 범죄자는 상대적으로 적어 여자의 범죄는 더욱 눈에 띄길래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여자를 콕 집어 독부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에 와서는 여성에 의한 잔학한 범죄가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여성에 의한 흉악 범죄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독부의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조선 초기 어우동이 큰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그것은 간통 혹은 불륜 사건이었으므로 그걸 가지고 어우동을 “독부”라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아마 이야기 속에서 <심청전>의 뺑덕어미나 <장화홍련전>에서의 장화와 홍련의 계모 정도가 독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는 실제로 여성에 의한 잔혹 범죄가 여러 번 있었으며, 그 당사자를 “독부”라 하여 현재까지도 기록에 남아있다.


일본 영화 <독부 오덴과 사형집행인 아사>는 1977년 개봉되었다. 이 이야기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독부(毒婦) 오덴(お伝)과 사형집행인 아사(首切り浅)에 대해 알아보자. 다카하시 오덴(高橋お伝)은 19세기 후반에 살았던 여자로서, 살인죄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강도짓을 하면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살인 사건은 상대방의 잘못이 컸던 것으로 밝혀져 오덴으로서는 독부(毒婦)란 별칭을 얻게 된 것이 좀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참수형을 당한 여자로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다만, 당시 그녀의 살인이 일본 사회에 일대 충격을 주었으므로, 그 영향으로 사람들이 최후로 참수형을 당한 여성 범죄자로 알려진 것 같다. 오덴이 참수형을 당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모델로 한 소설과 연극 등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오덴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화, 연극, 만화 등이 여러 편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 에도시대(江戸時代)에는 사형집행인을 “목 베는 사람”(首斬り人)이라 불렀다. 야마다(山田) 가문은 대대로 가문의 수장에게 아사우에몽(浅右衛門 또는 朝右衛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가독을 잇게 되는 자는 그 이름을 야마다 아사우에몽(山田浅右衛門)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원래 범죄자에 대한 참수형은 치안을 담당하는 관청의 하급관리들이 담당하였는데, 야마다 아사우에몽이 그 일을 대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사형집행인 아사” (人斬り浅)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러면 아사우에몽은 왜 사형수의 목을 베는 궂은일을 일부로 대행하였을까?  


바로 칼의 품질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이 많다. 야마다 가문은 막부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일도 하였는데, 이때 칼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형수 목을 베는 일을 대행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야마다 가문을 모델로 하여 <사형집행인 아사>(首斬り朝)라는 만화가 출간되었다. 이 만화는 대히트를 쳤으며, <사무라이 에그제큐셔너>(Samurai Executioner)란 제목으로 영어판도 출간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로서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만화는 12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영화 <독부(毒婦) 오덴과 사형집행인 아사>는 이 12개의 이야기에는 포함되지 않은 영화이다.


가난한 농부의 딸인 오덴(お伝)은 아버지의 빚을 대신하여 카츠조(勝蔵)라는 노름꾼에게 팔려간다. 이때 아사우에몽이 그녀를 가로채어 자신의 여자로 만든다. 이렇게 오덴은 카츠조와 아사우에몽에게 농락 당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노름판에 노름판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도둑 이치타로(市太郎)가 나타나 노름판을 뒤엎고 돈을 훔쳐 달아난다. 오덴은 이치타로가 타고 온 마차에 몰래 올라타 카츠조와 아사우에몽으로부터 도망을 간다. 도망가는 오덴의 뒤를 그녀의 아버지와 카츠조가 쫓아오자, 그녀는 둘을 모두 죽인다.

이치타로와 오덴은 서로 사랑하면서 강도 행각으로 생계를 해결해나간다. 그러던 중 남녀 각각 한 명의 동료가 더 생겨 이들은 4인조 강도단이 된다. 그리고는 이들은 제도 은행(帝都銀行), 관공서 등을 차례차례 습격하여 돈과 무기를 강탈해간다. 이들이 이렇게 강도짓을 하며 전국을 돌게 되자, 경찰도 이들을 추격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모두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다. 오뎅의 사형집행인 아사의 칼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다.


이 영화 제목이 <독부 오덴과 사형집행인 아사>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사형집행인 아사의 존재감은 너무나 약하다. 그는 빚 대신 끌려온 소녀를 가로채 농락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는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제목에 “사형집행인 아사”란 말을 넣은 것은 <사형집행인 아사> 영화의 인기를 빌리려는 얄팍한 상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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