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8 b) 지리산 천은사를 구례 산수유 마을
최참판 댁으로 안내하는 도로표지판에 최참판댁과 함께 한산사(寒山寺)라는 사찰이 표시되어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산사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한산사는 최참판댁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기 전 옆길로 빠지면 된다. 거리로 치면 최참판댁에서 1킬로 남짓 되는 것 같다. 한산사 가는 길은 상당히 경사가 심한 산길이다. 다행히 차로 바로 절까지 갈 수 있어 힘은 들지 않는다.
한산사에 도착했다. 참 특이한 절이다. 높은 산 허리에 한산사가 있고 바로 그 앞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다. 보통 절에 가보면 아무리 절과 가까운 주차장이라고 해도 주차장과 절 사이에는 담장이 있어 문을 통해 절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한산사는 그렇지 않다. 대웅전 바로 아래가 주차장이다. 그러니까 일주문이니 그런 것은 전혀 없고 주차장 옆에 바로 대웅전이 있는 셈이다. 절은 아주 작아, 작은 규모의 대웅전 외에 아주 작은 삼성각을 비롯한 부속 건물이 하나 있을 뿐이다. 1970년대에 지어진 절로서 역사적 가치도 그다지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절을 찾았을까? 그것은 바로 이 절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때문이다. 이 절은 주차장 전체가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산 중턱 높은 곳에 절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차장 전망대에 서면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바로 아래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오른쪽 저쪽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평야에 있는 논밭들은 잘 정돈되어 있다. 이렇게 탁 트인 전망대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별 쓸데없는 짓을 잘한다. 아래 펼쳐진 평야의 넓이가 어느 정도 될까 생각해 보았다. 눈어림으로 대략 계산해보니 7-80만 평 정도는 될 것 같다. 이 넓은 논밭이 모두 소설 속의 최참판 댁의 소유였을까?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참판의 땅에서 소작을 하였을까? 소작료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 당시에도 논밭의 매매가 자주 이루어졌을까? 토지가 대부분 대지주의 소유였다면 지주들이 땅을 팔지 않을 것 같은데, 과연 소작농이 돈을 모았다고 해서 땅을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자 답도 없는 의문을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한산사는 최참판 댁에서 차로는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다. 토지 소설 속의 마을 풍경을 한번 상상해본다는 의미에서도 최참판 댁을 찾는 사람들은 한산사도 한번 들러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례 산수유마을 가는 길 도로안내판에 천은사라는 표시가 나타난다.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천은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라 한다. 지나는 길인 만큼 들러보기로 하였다.
기가 질릴 정도로 넓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의 넓이로 봐서는 상당히 큰 사찰인 것 같다. 주차장에서 200미터 남짓 걸어 들어가니 바로 천은사가 나온다. 주차장을 보고 느꼈던 만큼 큰 사찰은 아니다. 천은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어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 구렁이를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천은사(泉隱寺)로 하였다고 한다.
나야 불교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에는 관심이 없고, 건물들을 둘러보는 것이 취미이다. 그동안 여러 절을 많이 가보았는데, 큰 절이건 작은 절이건 저마다 특징이 있다. 그에 비하면 천은사는 절 규모는 큰 편에 속하지만 이렇다 할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절이라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집사람은 모처럼 절에 왔으니 잠깐 불공을 드리겠다고 한다. 그 시간에 나는 절 안을 어슬렁 거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대웅전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보제루(普濟樓)가 서있다. 보제루란 법요식이나 집회소로 사용되는 건물인데, 학교로 치면 강당, 회사로 치면 대회의실 정도에 해당하는 건물이라 할 것이다. 그리 오래된 건물 같지는 않으나 채색되지 않은 목재로 지어진 건물이어서 상당히 고풍스러운 맛이 난다. 오늘 꽤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집사람이 불공을 드리는 동안 보제루 마루 나무계단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쉰다.
구례 산수유 마을은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마을 전체에 산수유나무가 자라고 있어 봄이 되면 온 마을이 산수유 꽃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매년 3월 말에는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데, 이 역시 매화축제와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산동성에서 살던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를 가져와 산수유 꽃을 보면서 고향생각을 하던 것이 이 마을에 산수유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의 행정구역도 ‘산동면’이다.
산수유 꽃은 백매화가 핀지 1주일 정도 지나서 핀다고 한다. 게다가 산수유 마을은 광양보다 북쪽인 데다 마을이 지대가 높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광양의 백매화도 아직 피지 않았는데, 산수유가 피었을 리가 없다고는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혹시는 역시였다. 산수유 마을로 들어섰지만 산수유 꽃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산수유 마을은 완만한 넓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집집마다 산수유나무가 있고, 길 가나 밭,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에 산수유나무들이 자라고 있지만 꽃이 필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뒤를 지나는 높은 도로 옆에 있는 전망대에서 마을 구경만 하고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역시 3월 말이나 되어 여행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례나 하동시장에서 봄나물을 산다는 했는데 그냥 지나쳤다. 지나가는 길에 남원 춘향골 전통시장이 있어 들러 봄나물을 사기로 했다. 내비게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춘향골 전통시장을 찾아가니, 광한루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남원 광한루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찾았다. 그래서 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춘향골 전통시장은 규모가 꽤 큰 시장이다. 시장 바로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도 쉽다. 그런데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나 한산하다. 장보는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거의 1/3 정도의 가게는 문을 닫은 것 같다. 산나물을 팔 것 같은 가게를 찾았지만, 손님이 워낙 없는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이 시간이 특별히 그런지 아니면 늘 그런 상태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나물을 못 샀지만 이왕 시장을 찾은 김에 눈에 띄는 특산품이라도 있으면 사려고 텅 빈 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어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게들 뿐이다. 그런데다 손님마저 없으니 상품이 신선도가 낮아 보여 도저히 살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만 두기로 했다.
집까지는 이제 1시간 40분 정도의 거리이다. 고속도로에 올라 운전대를 집사람에게 맡기고 어젯밤 감상하다가 중간에 잠든 <007 선더볼 작전>을 보노라니 벌써 집에 도착한다.
이로서 이번 여행은 끝. 보름 정도 지나 다시 꽃구경을 가야겠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