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8 a) 광양 매화마을과 최참판댁
오늘은 집으로 가는 날이다. 어제 찾았던 광양 매화마을을 다시 한번 들리고 이후 가는 길에 들릴 수 있는 명승지를 몇 곳 들리면서 가기로 하였다. 휴양림의 퇴실은 오전 11시까지 하여야 한다. 어제 피곤했던 탓인지 일어나니 벌써 9시가 훌쩍 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거의 10시 가까이 되어 서둘러 짐을 챙겼다. 차를 출발하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 간다.
어제 찾았던 매화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어제 날씨가 하도 좋아 하룻밤 사이에 매화꽃이 활짝 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였다. 오뉴월 하루 땡볕이 무섭다고 했는데, 화창한 봄날 날씨도 그에 못지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만큼 어제와 오늘 날씨가 좋았다.
어제 갔던 길로 다시 매화마을을 찾았다. 어제 갔다 온 관록이 있어 이제는 차를 강변도로 옆 주차장이 아니라 홍쌍리 청매실농원 앞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기로 했다. 어제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훨씬 많아졌다. 어제는 주차장에 상당한 여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강변도로 주차장은 물론, 매화마을로 올라가는 언덕길 한쪽에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얼뜻 보기에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도 어제보다 훨씬 많다.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으려나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마침 나오는 차가 있어 쉽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역시 하룻밤 사이에 기적은 생기지 않는다. 매화꽃이 어제와 큰 차이가 없다. 조금 주의 깊게 보니 백매화가 어제 보다는 약간 더 핀 것 같았다. 역시 하룻밤 사이에 꽃이 그렇게 확 달라질 정도도 피진 않았다. 경기도 파주에는 내 농장이 있다. 그곳에도 많은 매실나무를 심었는데, 여기보다는 훨씬 북쪽이라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어야 매화가 핀다. 그런데 어떤 때는 정말 꽃 몽우리만 보이다가 하루아침에 꽃이 활짝 피는 경우를 자주 본다. 여기는 날씨가 훨씬 따뜻하여 이 정도 날씨면 꽃이 금방 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제 이곳 청매실 농원은 거의 둘러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어제 못 가본 곳에만 몇 곳을 둘러보았다. 어제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아져서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훨씬 신이 난 것 같다. 구경을 한 후 내려오다가 장사를 하는 어느 할머니에게 왜 이리 꽃이 활짝 피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직은 새벽에는 얼음이 얼 정도로 춥다고 한다. 그래서 꽃을 피우려 하다가도 도로 움츠리고 만다고 한다. 게다가 봄비가 와야 꽃이 활짝 피는데, 요즘은 너무 가물어 꽃이 쉽게 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 농장에서도 봄비가 온 다음날 꽃이 활짝 피었던 것 같다.
내려오다가 길가에 있는 매화나무를 보니, 나무 아래에 푸른색의 야생화가 많이 피어있다. 푸른색의 작은 꽃인데, 군데군데 소복하게 피어있다. 야생화가 핀 것을 보니 역시 봄은 봄이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꽃이라 꽃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개불알꽃>이라 한다. 앙증맞게 작고 예쁜 꽃인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다음 행선지는 어제 가려고 했다가 못 간 구례 산수유마을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하동을 거쳐야 한다. 차를 한참 달리다 보니 도로 안내판에 <최참판댁>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아마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댁인가 보다. 이왕 가는 길이니 들리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이곳이 드라마 <토지>를 촬영하기 위해 건립한 세트장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고 소설을 통해 명소가 된 이곳 하동에 비록 실재 인물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토지의 주무대가 된 이곳 하동에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한 토지 테마파크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나는 토지 소설도 읽지 않고, 드라마도 감상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귓동냥으로 대략 그 내용을 알고 있을 뿐이다.
최참판댁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기념품 가게나 식당들이 줄지어 서있다. 마치 유명 관광지에 온 느낌이다. 테마파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입장권을 산 후 제법 긴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상가들이 끝나는 지점부터 드라마 토지에 나오는 건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작은 초가집들을 여러 채 지나며 가다 보면 비로소 최참판댁이 나온다. 상당히 잘 조성된 테마파크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이 살던 집들이 하나씩 소개된다.
최참판댁 입구에 가면 넓은 광장 한켠에 우리나라 사극 영화와 드라마의 포스터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이곳이 완성된 후 옛 가옥들이 잘 재현되어 사극 촬영에 좋은 장소라 여겨져 사극 촬영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짐작한 것처럼 촬영을 위해 이곳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조성하였더니 드라마나 영화 촬영에 많이 이용된다는 것이다.
최참판 댁은 상당히 큰 한옥이다. 넓이나 집 칸수로만 따진다면 마을의 다른 모든 집들을 합한 것보다 이 집이 더 클 것 같다. 참판이라면 지금으로 치면 중앙부처의 차관에 해당한다. 참판을 역임한 사람이 지방에 내려오면 이만한 재산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도 드는 한편, 옛날 많지도 않은 녹을 받으면서 어떻게 이런 많은 재산을 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판이어서 재산을 모았는지, 아니면 재산 많은 집의 자제가 참판이 되었는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이곳에도 마을 곳곳에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며칠 뒤 매화가 만개하면 최참판댁의 고대광실 기와집을 비롯하여 마을의 초가집들과 매화가 서로 어울려 더욱 아픔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것 같다. 길을 가다 보니 멀리서 보면 화장지 휴지를 던져 놓은 것 같은 것들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목화이다. 목화나무에 열린 목화를 가지런히 늘어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목화솜이 붙어있는 목화를 처음 본다. 옛날 이불에서 보던 솜 덩어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우리나라 옛 가옥이나 생활상에 대해 그다지 지식이 없지만, 느낌으로는 잘 재현해 놓은 것 같다. 다만 내가 느끼기로는 옛날 권세가나 부잣집들은 평지의 넓은 터 위에 세워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참판 댁은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좀 의아스럽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넓은 터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인지 집의 규모에 비해서는 대지는 상당히 좁은 느낌이다. 보통 부잣집이나 세도가들이라면 넓은 마당이 먼저 연상되는데, 이 집은 마당도 아주 비좁다.
집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소설의 주인공 서희가 어릴 때 거처하였다는 별당이 나온다. 조그만 별당채에다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되어있다. 아주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이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이렇게 집 안에 정원을 만들어 두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 뒤로 가면 길 양편이 대나무 숲으로 되어 있는 좁은 산책길이 나온다. 비록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대숲 사이를 걷는 흥취도 괜찮다.
들어오는 입구 표지판에는 이 속에 박경리 문학관도 있다고 본 것 같은데, 어디 있는지 눈의 띄지 않는다. 찾아볼까 했으나 오늘 벌써 많이 걸어 더 이상 찾아 돌아다니기가 싫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옛 마을을 어느 정도 사실과 가깝게 재현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찾아볼 만한 곳이다. 많은 국내 관광객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작년에 평창에 가서 이효석 문학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그곳도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는데, 이곳은 그 이상으로 훨씬 규모가 크다. 다만 주위가 너무 상업화되었다는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