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치유신(明治維新) 전후를 배경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사무라이의 삶
명치유신(明治維新)은 일본의 근대와 현대를 구분 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과거의 봉건 정치가 막을 내리고, 일본은 현대화된 통일국가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구 질서체계에서 확립되어 왔던 사회적 계급과 생존 방식도 일대 변화가 초래되었던 것이다. 명치유신 이전에도 막부 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무라이들은 영주를 모시며 관료의 역할을 수행함과 아울러 치안과 체제 수호를 무력으로 지켜온 권력집단이었다. 명치유신으로 입헌군주제의 통일국가가 되자, 사무라이의 역할은 크게 위축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다.
영화 <늑대여, 낙일(落日)을 베어라>(狼よ落日を斬れ)는 명치유신을 전후하여 각자의 길을 가는 4인의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서, 1974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정통 사무라이 영화로 평가할 수 있으며, 서양에서도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제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영화 <Last Samura>와는 완전히 별개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격동의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피투성이의 싸움을 살아 넘는 검객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스기 토라노스케(杉虎之助)는 막부의 고위 사무라이의 아들도 태어났으나, 14세에 가출한다. 그는 곧 이케모토 시게베(池元茂兵衛)라는 검술의 달인을 만나 무외류(無外流)라는 검법을 전수받는다. 20세가 지나 다시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로 돌아온 토라노스케는 사무라이의 싸움에 말려 들어 곤란을 겪고 있는 중년 남자를 구해주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의 숙부였다. 그 숙부는 어릴 때 부모 이상으로 토라노스케를 돌보아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을 통해 토라노스케는 문하생만 천명이 넘는 에도 굴지의 검법 도장인 심형도류(心形刀流) 이니와(伊庭) 도장의 후계자 이니와 하치로(伊庭八朗)와도 사귀게 된다.
세상은 나라 전체가 근왕(勤王) 파와 사막(仕幕) 파로 나뉘어 항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근왕파”란 정치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세력이며, 사막파는 막부 체제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세력이다. 교토에서는 사막파의 무력조직인 신센구미(新選組)가 근왕파의 인사들을 대량 학살하고 있었다. 이러한 뒤숭숭한 세상에서 토라노스케는 싸쓰마(薩摩) 번의 나카무라 한지로(中村伴次郎)라는 검술 고수를 만나 우정을 나눈다. 토라노스케, 하치로, 시게베, 한지로 등 4명의 무사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근왕파로 혹은 사막파에 가담하여 서로 칼을 겨누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무슨 철저한 이념을 가지고 각각의 진영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그저 주변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는 별 관계없이 다른 정치 진영에 속해버린 것뿐이었다.
토라노스케의 스승인 시게베는 사막파에 가담하여 일을 하지만, 이미 사막파가 권력투쟁에서 지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제자인 토라노스케에게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도록 설득한다. 그리고 시게베는 사쓰마번의 검객인 나카무라 한지로의 칼에 죽고 만다. 토라노스케는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쓰마로 낙향한 한지로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 대결을 벌여 승리하지만, 토라노스케는 이미 사무라이의 시대는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 한지로를 베지 않고 돌아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무라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영화는 대부분 B급 영화가 많다. 이에 비해 이 영화 <늑대여, 낙일(落日)을 베어라>는 보기 드물게 정통 사무라이 영화로 볼 수 있다. 일본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큰 호평을 받은 영화로서 한 번쯤 감상할만한 괜찮은 영화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