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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02. 2022

영화: 아득한 산이 부르는 소리(遙かなる山の呼び声)

홋카이도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싹트는 중년의 사랑

일본 북단의 섬 홋카이도(北海道)는 거친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지역이다. 필자는 1995년 2월 홋카이도를 혼자서 약 3주간 여행한 적이 있다. 홋카이도의 최남단 도시 하코다테(函館)에서 시작하여 삿포로(札幌), 오타르(小樽), 아사히카와(旭川), 왓카나이(稚内), 소야(宗谷), 아바시리(網走), 오비히로(帯広) 등 홋카이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섬 여기저기 기찻길로 상당히 달려도 인가 한 곳 보이지 않는 눈 덮인 넓은 들판이 곳곳에 있었다. 또 오오츠쿠 해로부터 흘러 들어온 유빙들이 온 바다를 하얗게 덮고 있는 광경이라던가, 기차가 정차하는 각 역마다 미터 단위로 표시되어 있는 스키장의 적설량 등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아득한 산이 부르는 소리>(遙かなる山の呼び声)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서 1980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유명 감독인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이 제작한 것으로서, 야마다 감독은 여배우 바이쇼 치에코(倍賞千恵子)를 타미코(民子)란 캐릭터로 내세워 소위 타미코 3부작(民子3部作)을 제작하였는데, 이 영화는 그 마지막 작품이다. 타미코 3부작의 제1편인 <가족>은 일본의 서쪽 제일 끝인 나가사키 현(長崎県)의 조그만 섬에서 사는 타미코 일가가 새로운 생활을 찾아서 홋카이도로 향하면서 그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2편인 <고향>은 1편과 스토리 연결은 되지 않는데, 히로시마 현의 조선소에서 일하는 가장을 둔 타미코 일가가 새로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날 것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아득한 산이 부르는 소리>는 1편 <가족>과 이야기가 연결된다. 제1편 <가족>에서 타미코 부부, 시아버지, 남매의 다섯 식구의 타미코 일가는 나가사키 현을 출발하여 홋카이도로 여행한다. 도중에 아직 아기인 딸이 병으로 죽고, 홋카이도에 도착한 첫날밤에는 시아버지가 사망하고 만다. 홋카이도에는 다시 봄이 오고 타미코의 배에는 다시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가족>의 이야기였다.   

<아득한 산이 부르는 노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봄) 홋카이도의 동쪽 지방인 나카시베쯔(中標津)에 자리 잡은 타미코는 남편마저 사망해버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둘이서 살고 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목장 일로 타미코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른 봄날 폭풍우가 내려치는 한 밤중에 한 남자가 찾아와 하룻밤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타미코는 그 남자를 창고에 재우고, 식사도 가져다준다. 그날 밤 소가 새끼를 낳는데, 그 남자가 도와준다. 다음날 그 남자는 떠난다. 


(여름) 몇 개월 뒤 다시 그 남자, 즉 타시마(田島)가 타미코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을 일꾼으로 고용해달라고 부탁하며, 보수는 필요 없다고 한다. 타미코는 내키지 않았지만, 목장일이 하도 힘들어 그를 받아들인다. 타미코의 아들 다케시는 타시마를 무척 많이 따른다. 어느 날 타미코의 이웃에 사는 홀아비 아부타 타로(虻田太郎)가 타미코에 난행을 저지르려 한다. 이를 목격한 타시마가 아부타 타로를 혼내주자, 이에 앙심을 품은 아부타 타로는 동생들을 데리고 와 타시마를 혼내주려 한다. 그러나 타시마가 이들까지를 모두 혼내주자, 아부타 3형제는 그때부터 타시마를 형님이라 모시며 따른다. 


(가을) 타시마는 마을 축제에서 초원에서 벌이는 경마대회에 우승한다. 이제 타시마는 마을 사람들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타미코의 집에 경찰이 찾아와 타시마의 행방을 묻는다. 타시마는 과거 빚에 시달리다가 자살해 죽은 아내의 장례식 날에 찾아와 빌린 돈을 갚으라고 난동을 벌인 악덕 금융업자와 다투다가 그를 때려죽여버렸다. 그 일로 해서 타시마는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타시마는 경찰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다시 목장을 떠나려 한다. 어느덧 타시마를 사랑하게 된 타미코는 타시마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만, 타시마는 스스로 경찰을 불러 자수한다. 

(겨울) 타시마는 형이 확정되어 아바시리 형무소로 호송된다. 두 명의 경찰이 급행열차 오유키 호(大雪号)로 타시마를 호송하던 중 도중 역에서 타미꼬와 아부타 형제가 이 열차에 동승하여 타시마와 호송 경찰의 근처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는 척 이야기를 하면서 목장을 그만두었다는 등 타미코의 근황과 타미코가 타시마가 출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를 타시마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타미코는 노란 손수건을 타시마에게 건네고, 타시마는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눈 덮인 홋카이도의 풍경을 차창으로 내다본다. 


오랜만에 감상하는 따뜻하고 가슴 훈훈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홋카이도의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중년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무대가 되는 홋카이도의 작은 목장 주인은 장소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텼다고 한다. 교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주인공인 배우 바이쇼 치에코가 목장주를 설득하여 겨우 목장을 빌렸다고 한다. 이후 바이쇼 치에코는 매년 1년의 거의 반을 이 목장에서 지낼 만큼 이곳을 좋아하였으며, 그 덕에 이 목장도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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