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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1. 2022

영화: 막말태양전(幕末太陽傳)

시나카와(品川) 유곽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웃음꽃 넘치는 사건들

영화 <막말태양전>(幕末太陽傳)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막부 말기, 그러니까 1860년 전후를 무대로 한 태양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나는 이 영화 제목을 보고는 일본의 국뽕 영화인가 생각했더니, 막상 감상하고 보니 코미디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57년에 개봉된 흑백영화이다.


지금의 동경, 그러니까 막부 시대이면 에도(江戸)에는 여러 곳에 환락가가 있었고, 유곽도 이곳저곳에 있었다. 에도의 유곽으로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요시와라(吉原)로서, 요시와라는 주로 에도의 돈 많은 상인들이 찾던 곳이었다. 요시와라 외에 또 큰 유곽이 있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시나카와(品川) 지역이다. 시나카와 지역은 에도시대 일본의 동서를 연결하는 가장 큰 도로였던 동해도(東海道, 도카이도)의 출발점이 되는 곳으로써,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들다 보니 이 지역에는 많은 역사(驛舍)와 숙소가 몰려있었다. 이러한 지역에 유곽이란 환락업소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화 <막말태양전>은 시나카와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유곽 <사가미야>(相模屋)를 무대로 일어난 여러 사건을 그랜드 호텔 방식의 구성으로 빠른 템포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에서 “그랜드 호텔 방식”이란 호텔과 같은 큰 하나의 장소에 모인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나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내는 이야기를 말한다.


때는 막부 말기, 시나카와의 유곽 사가미야(相模屋)에 사헤이지의 일행이 찾아와 실컷 먹고 마시고 논 뒤에는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한다. 화가 난 유곽의 주인 덴베에(伝兵衛)는 사헤이지를 창고에 가두나, 그는 언제 빠져나왔는지 모르게 거기서 나와 유곽 안의 이일 저일을 눈치 빠르게 해치운다. 손님이 오면 마치 자신이 지배인인 것처럼 손님을 맞이하고, 유녀(遊女)들 간의 다툼도 솜씨 좋게 해결해준다.

사가미야에는 쵸슈(長州)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와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눌러앉아 죽치고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는 명치 유신의 공신 가운데 몇 손가락에 드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서,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사(志士)라 칭하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유세가 대단하다. 사가미야 점주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손님들인데, 이들에 대해서도 사헤이지는 요령 좋게 접대한다.


점차 시간이 지나 사가미야의 온갖 궂은일, 어려운 일, 골치 아픈 일을 모두 도맡아 처리해주는 사헤이지는 이제 사가미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기녀들도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사헤이지는 꿈쩍도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유녀들의 온갖 일을 처리해주면서 그때마다 돈을 받아 돈을 모은다.


주위에 화재가 발생한 어느 날 사헤이지는 이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정리하고 여행 준비를 한다. 그 마지막 날까지도 사헤이지 유녀 코하루의 부탁을 받아 그녀를 쫓아다니는 손님을 속여서 물리친다.


이 영화에서는 19세기 말엽의 일본의 유곽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그리고 능글능글하며, 모든 일을 얼렁뚱땅 눈치 있게 처리하는 주인공 사에이지의 모습도 밉지 않다. 이 영화에서 사헤이지는 기침을 자주 한다. 아마 폐결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대라면 폐결핵은 불치의 병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먼 길을 떠나는 사헤이지는 아마 투병생활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또 이 영화를 보면 유녀들과 유곽 점주와의 관계는 완전한 일방적인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떤 손님이 싫으면 기녀는 싫다고 버티고, 점주는 그런 유녀를 윽박지르지 않고 이리저리 달랜다. 실제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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