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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2. 2022

영화: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기독교의 위선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인간의 존엄

화가 고야는 아시다시피 마야부인의 그림을 그린 세계적인 화가이다. 그가 그린 <옷 벗은 마야>(The Naked Maja)와 <옷 입은 마야>(The Clothed Maja)는 세계적 명화로서 지금도 마드리드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영화 고야의 <고야의 유령>(Goya's Ghosts)은 기독교의 위선과 그리고 인간을 파괴시키는 종교의 해악을 화가 고야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이 영화는 2006년 스페인에서 제작되었는데, 큰 감동과 함께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그동안 스페인 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고야의 <옷입은 마야>와 <옷벗은 마야>

부유한 상인의 딸인 아름답고 청순한 이네스는 고야에게는 이상의 여성으로서, 고야는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고야는 이 외에도 많은 그림을 그리는데, 그 가운데는 기독교를 풍자한 그림들도 적지 않았다. 교회 측에서는 이런 고야를 고약하게 생각하고 종교재판에 넘길 생각까지도 하지만, 고야가 화가로서의 평판이 높아 그냥 둔다. 어느 날 고야의 마음의 연인 이네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갇히게 된다. 이네스는 자기는 결코 기독교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호소하지만, 고위 성직자로 구성된 종교재판관들은 그녀의 호소를 외면한다.    


이네스의 아버지인 토마스는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고야에게 부탁하여 기독교에서 신망이 높은 로렌조 신부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는 로렌조 신부에게 막대한 금액의 성당 재건 비용을 부담하고, 교회의 일에 적극 협력할 테니 딸의 석방을 주선해 줄 것을 호소한다. 토마스의 부탁을 받은 로렌조 신부는 종교재판관에게 이네스의 석방을 타진하지만 거부당한다. 그리하여 아네스는 거의 20년간을 습기 찬 교회의 지하감옥에 갇히게 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군을 격파하고,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영향 하에 들어간다.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토는 스페인 국왕으로 등극한다. 조제프 보나파르토는 등극하자마자 그동안 종교재판 등으로 악행을 저지른 고위 성직자들을 숙청하고, 종교재판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한다. 이네스도 함께 석방되지만 20년에 걸친 감옥생활로 그녀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로렌조 신부는 그녀를 석방해 주겠다고 꼬여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고, 그로 인해 그녀는 감옥에서 딸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 딸마저도 교회에 빼앗겨 행방도 모르는 상태이다. 부유했던 이네스의 집은 이미 망하여 그녀는 석방되었지만 의지할 데는 어디에도 없다.


고야는 그런 이네스를 보호해주면서 그동안 이네스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두 알게 된다. 그래서 고야는 이네스에게 딸을 찾아주는 것을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백방으로 이네스의 딸을 찾아 나선다. 버려진 이네스의 딸 알리시아는 집시가 거두어 아직 10대인 그녀는 거리에서 몸을 팔아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고야는 알리시아를 찾아 이네스와 상봉시키나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하면서 스페인은 영국군의 점령하에 들어가게 된다. 영국군은 조제프 보나파르트에 의해 숙청된 옛 고위 성직자를 복직시키며, 다시 교회는 옛날로 돌아간다. 그리고 격변의 스페인 정변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거리의 여인들을 사회 정화를 한다는 명목으로 잡아서 신대륙 미국으로 보내려고 한다. 이네스와 알리시아도 영국군에 잡혀 미국으로 보내지는 호송 마차에 실렸으나, 둘은 도중에 탈출한다. 이들 모녀 앞에는 앞으로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부류의 성직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종교재판을 관장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인간을 심판한다는 고위 성직자이다. 이들은 일종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로서, 항상 색안경을 끼고 인간을 관찰하고 체포한다. 그리고 일단 자신의 의심이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갖은 고문을 가하여 거짓 자백을 강요하여 혹독한 형벌을 내린다.  


또 하나는 기독교 원리주의자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아주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성직자이다. 로렌조 신부가 이에 해당하는데, 그는 종교재판소가 이네스를 고문하여 억지 죄를 씌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교재판소가 가진 권력을 생각하며 그에 동조한다. 입으로는 신의 말씀을 되뇌지만,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혀 극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네스를 꼬여 그녀를 임신시키는 등 그의 말과 행동은 표리부동하다. 국외로 도피한 그는 나폴레옹의 휘하에 들어가 나폴레옹의 스페인 진주와 함께 스페인에서 권력자로서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이념, 새로운 종교를 강조하지만, 결국은 그 모두 개인의 욕심과 탐욕을 위한 것이다.

이네스가 종교재판소에서 벌을 받게 되자, 이네스의 아버지 토마스는 로렌조 신부를 초대하여 딸의 석방을 위해 종교재판소와 중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이다.


토마스: 우리 딸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딸이 석방될 수 있게 발 신부님이 중재해 주십시오.

로렌조 신부: 따님은 이미 죄를 자백하였다고 합니다.

토마스: 그것은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겠지요.

로렌조 신부: 종교재판소는 고문을 하지 않습니다. 신문을 한 것입니다.

토마스: 그럼 그 신문이라는 것이 너무나 혹독하여 딸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없는 죄를 자백했을 것입니다.

로렌조 신부: 아무리 심한 신문을 하더라도 죄가 없다면 하느님이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지켜주십니다.

토마스: 하느님을 믿으면 정말 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느님이 지켜지십니까? 하느님이 지켜주시면 거짓 자백을 하지 않게 됩니까?

로렌조 신부: 물론이지요.


그러자 토마스는 서류를 한 장 꺼내 로렌조 신부 앞에 내놓으며 거기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 그 서류에는 “나 로렌조는 사실은 사람이 아니고 오랑우탄과 침팬지 사이에서 태어난 짐승으로서 천하의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물건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것을 보고 로렌조 신부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며 당연히 그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자 토마스는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로렌조 신부를 천장에 매달게 한다. 강하게 저항하는 로렌조 신부에게 토마스는 만약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느님이 신부님을 지켜주실 것이므로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달랜다. 신부를 매단 후 다시 토마스는 로렌조 신부 앞에 그 서류를 내어놓고 서명을 하면 내려주겠다고 한다. 로렌조 신부는 고통에 단 1분도 견디지 못하고 서류에 서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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