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와 헬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리아드 이야기
동서고금에는 아름답다고 이름난 수많은 미녀들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등 많은 미녀들 가운데 누가 가장 아름다웠을까?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미녀 헬렌은 그 유력한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이 아닐까?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인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녀로 인해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트로이가 멸망했으니 가히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헬렌 오브 트로이>(Helen of Troy)는 헬렌을 중심으로 일리아드(Illiad)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2003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헬렌은 당시 그 시대에서는 최고의 미녀였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세계 최고의 미녀로서 현재 살아있는 배우 누군가가 출연할 수밖에 없다. 시에나 길로리(Sienna Guillory)가 최고 미녀 헬렌으로 출연하였다. 과연 세계 최고의 미녀로 출연할 만큼 아름다운 여배우이다.
<헬렌 오브 트로이>는 원작이 일리아드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는 일리아드와 동일하다. 그렇지만 이야기 전개는 헬렌과 그녀의 새로운 남편이 된 파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체 스토리가 일리아드와 동일하므로 여기서 새삼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일리아드 이야기와 다음과 같은 약간 몇 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헬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상당히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다. 헬렌은 어린 시절 테세우스(Theseus)와 페르세우스(Perseus)에 의해 납치되는데, 이들 두 영웅들은 나쁜 뜻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헬렌을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서였다. 납치된 헬렌은 처음에는 테세우스를 증오하나, 차츰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역시 영웅이라 그런 헬렌의 구애를 점잖게 거절한다. 테세우스는 헬렌을 되찾으로 온 헬렌의 오빠에 의해 살해된다. 이 장면은 신화와 조금 다르다. 테세우스는 헬렌의 쌍둥이 오빠로부터 공격을 받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의 죽음은 훨씬 뒷일이다. 그리고 페르세우스는 테세우스에 비해 앞선 영웅이라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둘이 거의 동년배로 나오고 있다.
일리아드에서는 헬렌이 아프로디테의 조정에 의해 남편 메넬라오스를 배반하고 파리스를 따라나선 것으로 나온다. 즉, 헬렌의 ‘바람기’가 큰 원이이었다. 이에 비해 이 영화에서는 헬렌이 메넬라오스와 결혼을 한 것 자체가 그녀의 뜻해 반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그리스 국가들 간의 정쟁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불행한 결혼을 하였고, 이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파리스가 나타나자 그를 따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파리스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헬렌을 남겨두고 홀로 떠나지만, 파리스를 환송하는 자리에 나온 헬렌이 파리스의 배를 향해 뛰어들어 헤엄쳐 가서 파리스와 함께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일리아드에서 파리스는 부모에게 버려진 후 다시 부모를 찾을 때까지는 용기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리스와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아주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는 헬렌의 전남편 메넬라오스와 결투에서 진 후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만을 건져 돌아오자 큰형이자 트로이 군의 총사령관인 헥토르에게 크게 질책을 당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만큼 매우 용기 있고 강한 인물로 나온다. 초반에 무술 시합에서 헥토르와의 싸워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파리스와 메넬라우스가 일대일로 겨뤄 파리스가 지는 것은 파리스의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아가멤논의 흉계에 의해 파리스가 독약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리스 군 총대장인 아가멤논이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일리아드 원작에서도 물론 상당히 음흉하고 난폭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여기서는 그 이상의 악당으로 묘사된다. 여기서는 트로이 전쟁 그 자체가 헬렌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트로이에 대한 아가멤논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헬렌은 단지 그 핑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가멤논의 흉폭함에 따라 그의 동생이자 헬렌의 전남편인 메렐라우스는 형 아래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나약한 동생으로 그려지고 있다.
일리아드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는 이 영화에서 그 존재감이 매우 미약하다. 그는 항상 아가멤논에게 쩔쩔매며 아가멤논에게 아부를 한다. 그리고 대머리에다 덩치가 크고 힘은 센 대신 머리는 약간 멍청한 인물, 즉 “단순무식형”으로 묘사된다. 헥토르와의 결투에서 이기는 것도 정정당당한 헥토르에 대해 그가 비겁한 방법으로 기습하였기 때문이라 그려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카산드라 역시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온다. 그녀는 파리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불행을 제거하라고 외치고, 파리스가 헬렌을 데려왔을 때, 그리고 그리스의 목마를 트로이 성으로 끌고 들어왔을 때 등 고비고비마다 불행을 경고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여하튼 일리아드를 새로운 각도에서 약간 틀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헬렌의 어린 시절, 파리스와 트로이로의 동행 과정 등 일리아드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을 흥미 있는 이야기로 재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재미가 있다. 아울러 아름다운 헬렌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