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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7. 2022

영화: 워털루(Waterloo)

나폴레옹의 최후의 일전 워털루 전투_위대한 전략가의 마지막 전쟁

중세부터 유럽의 최강국은 아마 프랑스였을 것이다. 경제력은 물론 문화와 예술, 군사력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유럽 최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작은 전투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사에 남아있는 중요한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주변국들에 비해 그렇게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프랑스는 영국과도 여러 번 전쟁을 치렀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승리는 언제나 영국이 가져갔다. 중세 영국 국왕은 프랑스 왕의 신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쟁이 벌어지면 번번이 영국이 승리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로서는 역사상 드물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 전 유럽을 석권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트라팔카 해전에서 영국에 참패하면서 나폴레옹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은 유럽 연합군에 의해 엘바섬으로 유배를 갔다. 그러나 1년 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다시 파리로 복귀하여 황제 자리를 되찾고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나폴레옹은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된다. 


영화 워털루(Waterloo)는 나폴레옹과 워털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영국, 미국, 소련, 이태리가 공동으로 1971년에 제작하였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였지만 프랑스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프랑스로서는 자신의 가장 뼈아픈 패배를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소련에서 많은 유명 배우들과 함께, 전쟁 장면에서 군사들을 엑스트러로 제공하였다.

이 영화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프랑스 본토로 상륙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본토에 상륙하여 파리를 향해 진격해오는 나폴레옹에게 수많은 군사들이 합류한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파리에 가까워 올수록 점점 불어난다. 나폴레옹 추방 후 프랑스 황제 자리에 오른 부르봉 왕가의 황제는 나폴레옹 군을 반란군이라 규정하고 최정예의 진압군을 파견한다. 진압군은 군대의 선봉에 서서 파리를 향해 걸어오는 나폴레옹과 맞닥트린다. 진압군은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가 나폴레옹 군을 향해 총구를 겨냥한다. 여기서 역사상 그 유명한 장면이 재현된다. 


진압군에 맞서 전투준비를 하려는 자신의 군대를 저지하고, 나폴레옹은 단신으로 진압군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병사들을 향해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따르든지 아니면 자신을 총으로 죽이든지 선택하라는 열변을 토한다. 나폴레옹을 향해 총을 겨냥하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 총을 내려놓고 모두 나폴레옹을 맞아 환호한다. 진압군 사령관도 기꺼이 나폴레옹의 휘하에 들어가며, 그는 이후 나폴레옹의 오른팔로서 신임을 받는다. 이미 모든 프랑스군이 나폴레옹을 따르게 됨에 따라 완전히 지지기반을 잃게 된 브루봉 왕가의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은 서둘러 파리를 떠나고, 나폴레옹은 파리에 무혈입성하여 다시 황제 자리에 오른다.   


유럽 연합국은 나폴레옹을 유럽의 위험요인이라 생각하여 빨리 그를 제거하려 하였도, 나폴레옹도 시간을 끌면 전 유럽이 뭉칠 것을 우려하여 서둘러 연합군을 격퇴하려고 한다. 이리하여 벨기에의 워털루 벌판에서 나폴레옹과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당초 영국의 웰링턴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려고 하였던 프로이센군의 합류가 늦어졌다. 이로 인해 영국군은 단독으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싸웠다. 전황은 프랑스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영국군은 패퇴를 목전에 두었으나, 늦게 프로이센 군이 전투에 합류함으로써 전황은 일거에 역전되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는 처참한 패패를 맛보고,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은 센트 헬레나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이 전투는 대표적인 근대 전투로서 대포와 머스킷 총을 주력 무기로 하고 있다. 대대적인 전투 장면이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장면이 볼만하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1970년대 영화에서는 전투 신의 촬영에 사람들을 직접 투입하였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전투의 경우, 특히 근대 전에 있어서는 진영의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극 전쟁영화에서 보듯이 돌격하면서 앞으로 두서없이 뛰어들다간 군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진영을 짜서 공격을 해야 공격력도 높이고, 아군의 피해도 최소화한다. 그런데 이렇게 진영을 갖춘 전투 장면을 촬영하려면, 여기에 출연하는 엑스트러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우르르 달려가 뒤엉켜 싸우는 전쟁 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소련군 1.5만 명이 엑스트러로 투입되었다. 그래서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기에 실전에 가까운 체계적인 전투 장면의 촬영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뒤 수많은 전쟁사가들이 이를 분석하였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패인 가운데 하나는 나폴레옹의 건강상태이다. 나폴레옹은 그때 극심한 치질을 앓았으며, 특히 전투가 있기 전날 밤은 밤새 비가 내려 치질의 상태가 최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투 초기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일어서지도 못해 텐트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도 그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필자는 20여 년 전인 1990년대 말쯤 벨기에의 워털루 벌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곳은 넓은 평야로서 온통 밭이다. 수백만 평도 넘을 광활한 벌판에는 아무런 건물도 없고, 오직 높이 20여 미터 정도의 전망대가 있을 뿐이다. 워낙 평평한 평야이다 보니까 20여 미터의 전망대에만 올라도 워털루 벌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때 전망대 위에서 워털루 전투를 상상해보며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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