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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7. 2022

드라마: 아사가 왔다(あさが来た)

일본의 개화기 오사카에서 활약한 여성 사업가이자 교육자의 일대기

일본 NHK에서 아침에 방송하는 드라마인 <TV소설>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아침 8시 무렵에 방송하여 여성 시청자가 많은 까닭인지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드라마 <아사가 왔다>도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오사카에서 사업가이자 교육자로서 활약한 히로오카 아사코(広岡浅子)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2015년 후반에서 2016년에 전반까지 약 150여 회에 걸쳐 방송되었다. 이 드라마는 NHK의 연속 TV소설로서는 21세기 들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드라마 <아사가 왔다>(あさが来た)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침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제목은 잘못된 것이며 <아사가 왔다>라고 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어로 아침은 “아사”(朝)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아사”이며, 그래서 제목도 “아침이 왔다”(朝が来た)가 아니라 “아사가 왔다”(あさが来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물론 “아사”라는 말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아침”을 뜻하는 중의적(重義的)이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키타”(来た)는 현재형인 “온다”가 아니라 과거형인 “왔다”라는 뜻이므로 이 드라마의 제목은 <아사가 왔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 드라마의 모델이 된 히로오카 아사코広岡浅子)란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히로오카 아사코는 19세기 중반 일본의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사업가로서 그리고 교육자 및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여성이다. 그녀는 현재도 일본에서 가장 큰 기업집단인 미쓰이(三井) 가문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아홉 번 넘어져도 열 번 일어난다는 “구전십기생”(九転十起生)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일본 최초의 여자대학인 일본여대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주인공 아사는 19세기 중반 교토(京都)에서 금융업을 하는 이마이(今井) 가에 둘째 딸로서 태어났다. 그녀의 언니는 하츠(初)로서, 둘은 사이가 무척 좋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반대다. 아사는 남자들처럼 활동적인 것을 성격을 가진 반면, 하츠는 전형적인 여성상으로서 조용하며 내성적이다. 드라마 <아사가 왔다>는 이 두 자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어간다. 자매는 비슷한 시기에 오사카에 있는 환전상의 2세와 결혼하여 고향인 교토를 떠난다. 하츠는 마유야마(眉山) 가문에 그리고 아사는 시로오카(白岡)가문으로 시집을 간다. 원래는 아사가 마유야마 가문으로 시집가게 되어 있었지만, 마유야마 가문에서 너무나 활달한 아사를 보고 질려서 신부를 바꾸자고 제안하여 결혼 상대가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히로오카 가문으로 시집간 아사는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시아버지와 항상 느긋하며 자유분방한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사보다는 사업가의 길로 나선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그때까지 시로오카 가문이 일을 해왔던 전근대적 금융업인 “환전성”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예견하고 그녀는 아사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 환전상을 은행으로 바꾸고, 또 석탄 광업에 적극 진출하며, 생명보험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간다. 아사 앞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나타나지만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아사는 이들 위험을 차례차례 극복해 나간다.


반면 마유야마 가로 시집간 하츠는 심술궂은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다. 마유야마 가 역시 환전상을 주업으로 하지만, 급속한 시대의 변화의 파도를 넘기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가족들은 야반도주를 하여 농사를 짓고 겨우 먹고사는 형편에 빠진다. 그렇지만 하츠는 동생 아사가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달리 기울어진 집안을 지키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정성을 다한다.


아사는 우연한 기회에 여성 교육에 열정을 가진 나루자와 이즈미(成澤泉)란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나루자와와 함께 여자대학을 설립하려 한다. 그러나 그 시대 일본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하던 때였다. 여자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시대였다. 아사는 현실의 벽 앞에 여러 번 좌절하기도 하나 마침내 여자대학을 설립하여 꿈을 이룬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게 내려있었으나, 일본은 우리나라나 중국보다도 오히려 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였다. 그래서 19세기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여성이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아사는 시대의 제약을 넘어 굳건히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사업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문필가로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세운 여자대학은 지금의 일본여대(日本女大)이다.


이 드라마에서 볼 만한 몇 장면.


아사는 사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에서 고다이 도모아쯔(五代友厚)은 사쓰마(薩摩) 번의 무사로서 아사가 영원히 존경하며 따르는 인물이다. 그는 혁명동지들인 오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정치와 관직의 길로 나아간 데 대하여 나라의 경제력이 없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정치세계를 떠나 사업가로서 일본의 발전에 기여한다. 아사는 그 외에도 오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등 명치유신의 유공자들과 깊게 사귀며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의 일본 최고의 사상가라 할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와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시부사화 에이이치(渋沢栄一)와도 교분을 갖는다.

아사가 여자대학을 설립한 후 학생들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몇 번 강연을 하게 된다. 그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아사를 존경하여 아사의 강의를 듣고 감복하지만, 오직 한 학생이 아사에 대해 잘난 체 한다고 아주 반항적이다. 이 당돌한 학생은 히라쯔카 라이테우(平塚らいてう, 平塚雷鳥)란 여자로서, 후에 사상가, 평론가, 작가로서 활약하며, 일본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여성해방운동가이다. 우리는 카바레 등에서 춤으로 여자를 꼬셔 여자를 등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비”라 부른다. 이 “제비”란 말이 바로 이 히라쯔카 라이테우로부터,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그녀의 젊은 애인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제비”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히라쯔카 라이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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