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0) 작은 교토(京都) 타카야마(高山)로
인천공항 제2 터미널을 처음 이용해 본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첫 해외여행이다. 요즘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 대한항공을 이용하기 싫지만, 여행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제2 터미널은 제1 터미널에 비해 넓고, 시설도 엄청 좋다.
딸애가 면세 화장품 몇 개 샀다고 찾아달란다. 면세점 인도장으로 갔다. 처음이다. 인도장 바깥에 근 100여 명은 될 것 같은 여자들이 어지럽게 주저앉아 있다. 면세 비닐 백, 종이 포장지 등이 산처럼 쌓여있다. 호기심이 생겨 뭔지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봤다.
원 세상에!!!
면세품 상품 포장지를 뜯고 있는 거다. 중국인들이 구입한 면세품을 인도받아 그 자리에서 뜯어, 포장지는 버리고 알맹이만 트렁크에 넣는 거다. 그 큰 트렁크가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으로 그득하다. 트렁크 하나에 수백만 원, 아니 몇 천만 원어치는 들어갈 것 같다. 실소비자일까, 보따리 장사일까, 어느 쪽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실소비자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보따리상들은 값비싼 화장품을, 저렇게 화려한 포장지를 버리고도 제대로 값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해본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유커의 구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부관페리(부산ㅡ시모노세키)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온 적이 있었다. 보따리 장사 아줌마들이 많이 타고 있어, 세관에서 그야말로 이 잡듯이 아줌마들의 트렁크를 뒤지고 있었다. 옆에서 그 내용물들을 보니 비누, 샴푸, 간장 등 대부분 생활 잡화였다. 지금 가격으로는 개당 몇 천 원 정도 하는 물건들이다. 짐을 뒤지다 보면 갈아입은 속옷 등도 나오곤 하는데, 그걸 보고 세관원들이 너무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에 비하면 중국 유커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물건을 싹쓸이하듯이 사가는 유커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너무 그럴 필요는 없다. 20여 년 전엔 우리가 그랬다. 일본 갔다 오는 아줌마들, 코끼리 밥통을 세 개씩 사 왔다. 손이 두 개인데 어떻게 3개를 가져오느냐고?
양손에 하나씩, 나머지 한 개는 발로 굴려서.
아무튼 우리 상품 사가는 유커들. 고마워하고 잘 대해줘야 할 것 같다. 유커들 예의도 없고, 몰상식하다고? 너무 그러지 말자. 우리도 2-30년 전엔 그랬으니까.
나고야(名古屋)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그리고 바로 다카야마(高山)로 향했다. 대도시를 운전해 빠져나가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다행히 고속도로로 바로 연결되었다. 좌측 운전이 부담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양보를 잘해주고 또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운전하기가 편하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니 나가라가와(長良川) 휴게소가 나온다. 나가라가와는 기후현(岐阜県)에 있는 강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가라가와 엔카(長良川艶歌). 반가운 마음으로 휴게소로 들어갔다.
속았다!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그래도 강변에 있는데, 나가라가와 휴게소라 써 붙여놓고는 주위에 강은커녕 도랑물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우가이 부네(鵜飼い舟)나 카가리 비(篝火)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실망이 너무 크다. 나가라가와는 옛날부터 가마우지 어로(漁撈)가 전통이다. 가마우지 목에 줄을 매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후, 가마우지를 강에 풀어놓으면 가마우지가 고기를 물고는 삼키지 못한다. 그때 어부가 가마우지로부터 고기를 거두어들인다. 이 가마우지 어로는 주로 밤에 하게 되는데, 가마우지 어로를 하는 배를 우가이 부네(鵜飼い舟)라 하고, 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배에 피워 놓은 화톳불을 카가리 비(篝火)라 한다. 지금은 가마우지 어로가 완전히 관광상품이 되어,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로보다는 관광객들로부터 얻는 수입이 훨씬 더 크다. 일본에 카가리 비(篝火)란 브랜드의 소주가 있는데, 이십여 년 전 정말 많이 마셨다.
가마우지 어로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도 있다. 상해 아래쪽에 있는 푸조(福州)라는 곳에서도 가마우지 어로를 하는데, 여기서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강에서 고기를 잡는다. 지리적으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같은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오랫 옛날 인류 이동의 기록을 보여주는 증거로 되기도 한다. 현대 일본인들의 조상은 시베리아 쪽에서, 한반도 쪽에서, 그리고 중국의 동해안 쪽을 거쳐서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일본으로 이동해 왔는데, 지리적으로 격리된 곳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유사한 문화는 바로 인류 이동의 증거가 된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빠졌는데, 아무튼 나가라가와는 전에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다. 그리고 이쯔키 히로시( 五木ひろし)가 부른 나가라가와 염가(長良川艶歌), 좋은 노래다.
<長良川艶歌> <나가라 강 염가>
1. 1.
水に きらめく かがり火は 강물에 번뜩이는 화톳불 빛은
誰に 思いを 燃やすやら 누군가에의 그리움을 더욱 타오르게 해
あなた あなた やさしい 旅の人 당신은 당신은 자상한 외로운 나그네
逢うた ひと夜の 情けを 乗せて 첫 만남 하룻밤의 깊은 정을 실어서
こころ まかせの 鵜飼い舟 마음을 내맡긴 가마우지 배 등불
2. 2.
好きと言われた嬉しさに 좋아한단 말을 들은 그 기쁨에
酔うて私は燃えたのよ 취해서 이 몸은 더욱 타 올랐어요
あなた あなた すがってみたい人 당신은 당신은 매달리고 싶은 사람
肌を寄せても明日は別れ 몸을 붙여 밤을 지나도 내일은 이별
窓に夜明けの風が泣く 창문에 새벽녘의 바람이 울어요
3. 3.
添えぬ さだめと知りながら 이루지 못할 운명이라 알고 있으면서도
今は他人じゃない二人 지금은 타인이 아닌 두 사람
あなた あなた 私を泣かす人 당신은 당신은 이 몸을 울리는 사람
枕淋しや鵜飼いの宿は 베개머리 외로운 가마우지 여관은
朝が白々 長良川 아침이 하얗게 밝은 나가라가와
오후 5시경 타카야마에 도착,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예약사이트에서는 상당히 좋은 호텔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좀 낡고 오래된 호텔이다. 역시 사진빨은 그다지 믿을게 못된다.
타카야마의 상징, 옛 거리(古い街並み)를 찾았다. 호텔에서 도보 5분 거리다. 옛 19세기를 생각게 하는 거리가 정겹다. 이 거리가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특히 서양인들은 이 거리를 보면 정말 끔벅 넘어간다. 그만큼 일본다운 거리이다. 교토의 고색창연한 기온(祇園)은 옛 환락가로서 좀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타카야마의 옛 거리는 정말 옛날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색다른 정취를 준다.
우리나라는 옛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가 적어 아쉽다. 서울엔 고궁이 많지만, 고궁을 제외하면 옛 모습을 찾을 곳이 없다. 전주 한옥마을이 성공하자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한옥마을을 만든다는데 대부분 실패한 것 같다. 전주 한옥마을은 화려한 한옥을 한 곳에 모아 지었지만, 우리 옛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지방 도시마다 천편일률적으로 고층아파트 일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쉽다.
가볍게 스시로 저녁을 때우고 호텔로 오는 중 술가게가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고, 들어가 보니 많은 술 중에서 "히다의 꽃"(飛騨の華)이라는 이 지역 청주가 눈에 뜨인다. 옛날엔 이 지역을 히다라고 했다. 히다에 왔으니 히다의 술을 마셔야지.
호텔에 노천온천이 없어 아쉽지만, 뜨거운 온천탕에 몸을 덥히고, 히다의 꽃 한잔....
기분 조옷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