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일란을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영자 이야기
<영자의 전성시대>는 소설가 조선작이 쓴 소설이다. 조선작은 1970년대 대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조해일 및 황석영과 더불어 1970년대 3대 신진작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소설은 개발연대에 우리 사회의 한 구석에서 소외된 삶을 살다가 죽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소설로도 성공하였지만, 1975년 염복순을 주인공 영자로 내세운 영화가 제작되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로 배우 염복순은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87 영자의 전성시대>는 12년 뒤 선우일란을 주인공 영자로 하여 다시 제작된 <영자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전작과 달리 이 영화는 흥행에 크게 실패하였다. 주인공인 선우일란이 에로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어 흥행이 실패하였다는 평가도 있으나 내 생각으로는 그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작품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소설에 기반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소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설에서는 영자가 화재로 죽게 되지만 영화에서는 화상만 입은 채 살아난다는 점이 다소 다르다. 그 밖에도 소소한 사건 몇 군데서 소설과 다른 내용이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에는 큰 관계가 없다.
영자는 시골에서 올라와 어느 부잣집에 식모(가정부)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집을 나온다. 이후 영자는 공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고 버스 차장(안내양)이 된다. 영자는 만원 버스에서 교통사고로 팔을 잃게 된다. 한쪽 팔을 잃은 영자는 일반적인 직장에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술집을 전전하다가 창녀라는 막다른 길로 들어간다. 그러나 한쪽 팔이 없는 영자로서는 이 생활도 순탄하지는 않다.
철공소 공원으로서 영자와 사귀던 창수는 군대에 들어가 월남전에 파병된다. 제대 후 돌아온 창수는 영자를 찾아 곳곳을 헤매다가 창녀 생활을 하고 있는 영자를 만난다. 창수는 영자에게 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영자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과 또 뒷골목을 전전해왔던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여 선뜻 응하지 못한다. 창수는 영자를 괴롭히던 건달과 싸움을 벌이고, 이로 인해 교도소로 가게 된다. 창수는 교도소에서도 영자에게 새 출발을 하자고 설득한다.
창수의 설득으로 영자는 착실하게 돈을 모은다. 창수가 출감을 할 때가 되자 영자는 어느 남자의 좋은 돈벌이가 있다고 돈을 가져오라고 꼬인다. 영자는 포주에게 지금까지 모았던 돈을 달라고 하자 포주는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틴다. 창수가 교도소를 나오던 날 영자가 있는 집에 불이 난다. 화상을 입고 겨우 살아난 영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찾아온 창수와 함께 새 출발을 위하여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려 한다.
떠나려는 영자에게 포주는 그동안 영자가 모든 돈이라고 하며, 영자에게 큰돈을 준다. 지난번에 영자에게 돈을 주지 않았던 것은 영자가 꼬임에 넘어가 돈을 날릴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했다. 영자는 창수와 함께 부푼 꿈을 안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 영화에 나오는 창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영자를 욕망의 상대로 그리고 돈을 우려낼 상대로 영자를 착취할 생각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류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영자와 함께 사창가에 있는 여자들은 서로의 아픔을 안고 서로를 도우며 이해한다. 포주도 악랄한 사람이 아니다. 비록 포주 일로 먹고살고, 영자와는 항상 악다구니를 쓰며 서로 싸우지만, 그래도 갈 곳 없는 영자를 거두어 주는 사람은 포주뿐이다. 욕을 하고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자를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자가 어렵게 모든 돈을 떼이지 않게 잘 간수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참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은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