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보스가 된 여고생의 활약
나는 젊은 시절에 소설을 꽤 읽었다. 그런데 어떤 작가의 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는가를 보면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郞)가 단연 톱이다. 춘원 이광수의 전집이나 기타 우리나라 유명 작가의 전집류도 많이 읽었지만, 이들 작가들의 전집류를 문고판 소설로 환산한다고 할 때 많아야 30권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카가와 지로의 소설은 문고판 기준으로 아마 100편도 넘게 읽었을 것이다.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은 거의가 추리소설이다. 본격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가벼운 터치의 추리물이 많아 읽기가 편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가 펴낸 소설은 2015년 시점에 580권을 돌파했으며, 소설의 누계 발행부수는 3억 3천만 부에 이르렀다. 그의 전성기는 1990년대 초반인데, 한 때는 그 해에 선정된 베스트셀러 랭킹 10위에 그의 소설이 6권이 포함된 적도 있었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가 쓴 <얼룩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인기를 얻었다.
나는 1994~95년 1년간 동경에 소재하는 어느 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한 바 있는데, 그때 편도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지하철 통근 시간에 주로 아카가와 지로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하루에 한 권, 적어도 이틀에 한 권씩은 그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소설은 문장도 쉬우며 글도 부담 없이 써 읽기가 아주 편하다. 일본어 공부 교재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 <세라복과 기관총>은 아카가와 지로가 쓴 청춘 미스터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81년에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3연작 소설인데, 첫 편이 본 영화의 작품인 <세라복과 기관총>이며, 다음 작은 <졸업, 세라복과 기관총, 그후>, 그리고 제3작은 <세라복과 기관총 3, 질주>이다.
폭풍우가 치는 밤 야쿠자 조직인 메다카 조(目高組) 두목의 임종 자리에 4명의 부하가 모인다. 조장은 자기의 후계자로 자신의 조카를 지명한다.
명랑하고 배짱 좋은 여고생 호시 이즈미(星泉, 薬師丸ひろ子, 야쿠시마루 히로코 분)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아버지가 돌연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다는 소식을 받는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거기엔 마유미라는 젊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유미는 자신이 이즈미의 아버지의 애인이라고 밝히면서,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이즈미와 함께 살라고 쓴 이즈미의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즈미와 마유미의 둘의 생활은 시작된다.
이즈미가 다니는 고교 교문 앞에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도열해있다. 학교는 큰 혼란에 빠지고, 그러는 사이 이즈미는 강제로 차에 실려 메다카 조의 사무실에 끌려오게 된다. 메다카 조는 선대의 유언에 의해 이즈미의 아버지가 두목으로 지명되었지만, 사고로 죽었으므로 그 딸인 이즈미가 4대 두목이 되었다고 한다. 부하들은 사쿠마 신(佐久間真), 마사(政), 히코, 메이 단 4명이다. 학교 앞에서 도열했던 사나이들은 조직원 수를 부풀리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었다. 이즈미는 거부하지만, 부하들이 이즈미가 거부한다면 자신들은 즉시 반대 조직에 쳐들어가 죽으려고 한다고 협박한다. 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두목이 될 것을 승낙한다.
이즈미가 사는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여 집안을 온통 어질러놓았다. 폭력단들이 이즈미의 아버지가 마약을 들여왔으며, 이것을 집안 어딘가에 숨겨놓았다고 생각하여 집안을 뒤진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즈미가 두목으로 있는 메다카 조와 마약을 탈취하려는 야쿠자 조직 간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실은 이즈미는 자신의 집에 마약이 숨겨있는지 조차도 잘 모른다. 메다카 조는 이즈미 아래에 부하가 4명밖에 없는 쇠락한 야쿠자 조직이다. 강력한 상대 조직에 상대가 될 수 없다. 마사와 히코 등 부하가 차례로 죽는다.
마침내 이즈미는 사쿠마와 함께 기관총을 들고 적대적인 조직의 본부에 뛰어든다. 그리고 한바탕 활약 끝에 적대 조직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즈미는 홀로 남은 부하 사쿠마와 돌아오고, 메다카 조를 해산한다. 사쿠마는 홋카이도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떠난다.
다시 여고생으로 돌아온 이즈미는 예전과 다름없는 평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즈미에게 경찰에 출두하라고 통보가 온다. 경찰서에 찾아간 이즈미에게 경찰은 변사체를 보여주면서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한다. 그것은 죽은 사쿠마의 시신이었다.
영화 제목 <세라복과 기관총>을 보면 마치 주인공인 여고생이 마치 레지던트 이블의 앨리스처럼 굉장한 여전사로 느껴진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밝고 명랑하며, 여고생 치고는 약간 배짱이 좋은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이즈미가 어설프지만 순진하고 충성심 깊은 부하들과 자신의 진심을 힘으로 강대한 야쿠자 조직과 싸워나간다. 기관총을 들고 상대 조직 본부에 뛰어들지만 총을 든 모습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기관총의 반동으로 총알은 제멋대로 날아간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호시 이즈미 역은 야쿠시마루 히로꼬(薬師丸ひろ子)가 맡았다. 이 당시 그녀의 실제 나이는 16살 정도였다. 나는 최근에 야쿠시마루 히로꼬가 출연한 드라마 <아마짱>과 <1리터의 눈물>을 감상한 적이 있다. 이들 드라마에서는 중년 여인으로 등장한다. 3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출연한 한 여배우의 옛 연기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이다. 야쿠시마루 히로꼬가 출연한 드라마 <아마짱>과 <1리터의 눈물>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jhlee541029/222125890990
https://blog.naver.com/jhlee541029/221998305653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여자고교에서는 대부분 해군 병사의 복장을 모티브로 한 세일러(sailor)복을 교복으로 하였다. 이 세일러복을 일본식 발음으로는 세라복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일러복이라 하지만, 이 영화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이 글에서는 일본식 발음으로 <세라복>으로 표기하였다. 일본에서 세라복이란 여고생을 상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