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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11. 2022

영화: 뽕

이미숙이 연기한 토속적 에로티시즘

나도향(羅稻香)은 20세기 초를 살았던 우리나라의 1세대 소설가라 할 수 있다. 본명은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은 그의 호이다. 그는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 <환희> 등 여러 소설을 남겼으나, 불과 24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다. 아까운 일이다. <뽕>은 나도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 <뽕>은 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서 1985년에 제작되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용담골에는 안협댁(이미숙 분)이라는 아낙이 타지에서 굴러들어 와 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삼보라는 노름꾼인데, 그는 전국의 노름판을 돌아다니며 어쩌다 한번 집에 들를 뿐이다. 안협댁은 그런 남편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안협댁은 마을의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 그 대가로 쌀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단지 먹고살기 위해 몸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가지고 싶은 반지를 낀 다른 아낙네를 보면 그녀의 남편을 꾀어 몸을 허락하는 대신 마누라의 반지를 달라고 한다. 


그녀는 마을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주눅이 들어 살지는 않는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간다. 그런 안협댁에게 마을 남자들은 모두 침을 흘리며 모여든다. 그중에는 머슴 삼돌이(이대근 분)가 있다. 안협댁은 다른 모든 남자들에게는 몸을 허락하지만, 삼돌이에게 만은 결코 응하지 않는다. 안협댁의 옆집 아낙은 자기의 남편이 안협댁의 몸을 가진 대가로 자신의 반지를 빼서 안협댁에 준 사실을 알게 된다. 화가 난 안협댁은 마을의 아낙들을 이끌고 안협댁의 집에 쳐들어간다. 다른 아낙네들도 자신들의 남편이 안협댁에 한눈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모두 한 마음으로 안협댁의 집에 들이닥쳐 안협댁을 집단으로 때리고 가구를 부수는 등 난장판을 만든다. 

함께 몰려와 자신을 때리는 아낙들을 향해 안협댁은 내가 마을 남자들을 상대한 것이 왜 나만 잘못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남자들이 내게 달려들어 그런 것이며, 남자들도 다 같은 잘못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것이다. 그 말에는 아낙들도 할 말이 없다. 분이 풀린 아낙들이 돌아가고, 난장판이 된 집안에서 여기저기 맞아 상처 투성이가 된 몸으로 안협댁은 엄마를 부르며 서럽게 운다. 어려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굶고 있는 동생에게 먹이려고 참외 서리를 하다가 참외밭주인에게 참외 한 알에 몸을 허락한 것에서부터 집에 입을 덜기 위해 팔리다시피 노름꾼 삼보에게 시집온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이 장면에서는 정말 마음이 짠하다. 


안협댁은 옆집 할머니와 함께 누에를 키운다. 할머니가 키우는 누에에서 얻는 수입을 반반 나누기로 하는 대신, 뽕 잎을 안협댁이 따다 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뽕이 부족하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머슴 삼돌이와 함께 잘 키운 뽕밭으로 뽕 잎을 훔치러 간다. 그러나 주인에게 들켜 삼돌이는 도망가고, 안협댁은 뽕밭 주인에게 몸을 허락한 대신 좋은 뽕잎을 잔뜩 따온다. 안협댁에 있어서 자기를 두고 혼자 도망간 삼돌이는 이제 점점 더 밉상이다. 삼돌이가 추근대지만 절대 허락 않는다. 


어느 날 남편 삼보가 돌아온다. 삼돌이는 삼보에게 안협댁의 그동안의 행실을 모두 일러바친다. 삼보는 안협댁에게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인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안협댁을 고자질한 삼돌이를 흠씬 두들겨 패준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삼보의 위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한다. 

삼보는 단순한 노름꾼은 아닌 것 같다. 그가 마을에 오는 날은 항상 일본 순사가 그를 따라와 지켜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삼돌이가 삼보에게 맞아 죽겠다고 말려달라고 일본 순사에게 부탁하지만, 일본 순사는 자기 일은 삼보를 지켜보는 것뿐이므로, 그 일에 대해서는 상관 않겠다고 한다. 삼포는 삼돌이를 흠씬 두들겨 팬 후 안협댁과 마주 앉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대한다. 


며칠이 지났다. 또 삼보가 집을 떠나는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는 삼보를 향해 어디에 무얼 하러 가느냐고 묻는다. 삼보는 “님도 보고 뽕도 따러간다”면서 웃으며 말하고 몸을 훌훌 털고 떠난다. 그 뒤를 일본 순사가 자전거를 타고 쫓아간다. 


이 이야기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비참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안협댁은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 살아가지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다. 그리고 안협댁을 둘러싼 시골 동네 남자들의 이야기는 토속적 에로티시즘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거의 40년 전에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놓아도 조금도 손색없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는 배우 이미숙의 역할이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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