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을 둘러싼 조직폭력배들의 내부 알력과 배신
조폭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에서는 가끔 조폭을 의리에 사는 협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으나, 나는 그런 조폭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권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등을 치는 악한들이다. 그들은 이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고 하며,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의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리’로 포장된 자신의 이익을 쫓을 뿐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는 이권을 둘러싼 조직 내의 알력과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배신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서 2006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조폭의 실체를 리얼하게 그렸다고 생각한다.
병두(조인성 분) 예닐곱 명의 부하를 데리고 있는 조그만 조폭의 두목이다. 병두는 더 큰 조폭의 두목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으면서, 부하들을 데리고 ‘형님’이 시키는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한다. 병두는 ‘형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나 하지만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은 푼돈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부하들을 먹여 살리기도 힘들다. 어렵게 오락실의 경영권을 따내 이제 살만한가 싶었는데, 이것마저 형님 대신에 감방에 갔다 온 후배에게 뺏긴다.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중 병두는 큰 사업을 하고 있는 황 회장(천호진)을 만나게 된다. 황 회장은 술자리에서 병두에게 어떤 부장 검사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불평을 하자, 병두는 그 부장 검사에게 테러를 가한다. 이 일로 황 회장은 병두를 신임하고, 병두에게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병두는 좋은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황 회장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황 회장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막대한 돈이 굴러들어 온다. 황 회장은 병두에게 이 일에 참여하라고 하고, 만약 사업이 성공하면 막대한 돈을 나누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때부터 병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내쫓으며 사업을 진행시켜 나간다. 퇴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갖은 악랄한 짓을 저질러 어쩔 수 없이 집을 내놓게 한다. 이러한 병두의 폭력적인 일처리 덕택에 사업은 순조로히 진행된다. 병두는 이제 지금까지의 고생은 끝나고 장밋빛 앞날이 열려있다고 믿는다.
병두는 우연히 어릴 적 친구인 현주(이보영 분)와 민호(남궁민 분)를 만난다. 현주는 병두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였던 아이로서, 오랜만에 현주를 만나자 그녀에 대한 병두의 사랑은 뜨거워진다. 현주도 병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민호는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조폭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영화 제작사에서는 신출내기 감독인 그의 제안에 시큰둥하다. 병두는 조폭 영화의 아이디어에 고심하는 민호에게 자신의 일을 모두 털어놓는다. 심지어는 부장검사 테러 사건까지도. 민호는 병두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쓰게 되고, 이는 영화사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아 작품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황 회장이 추진하던 재개발 사업도 이제 거의 성공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호의 영화도 대히트를 치고 있다. 민호의 영화를 관람한 병두는 깜짝 놀란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여야 할 부장검사 테러까지도 민호가 영화에 담은 것이다. 병두는 민호가 자신의 영화 성공을 위해 자기를 배반하였다고 생각하여 민호를 납치한다. 그리고 생매장의 위협까지 가한 후 더 이상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풀어준다. 민호는 이제 악랄한 조폭 병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위험인물인 병두와 더 이상 가까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한 병두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황 회장도 병두를 부담스러워한다. 검사 테러 사건이 알려지고, 그 배후가 자신이라고 드러난다면 자신이 위태로울 수 있다. 민호의 영화 상영 후 병두는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이때 자신의 부하가 찾아온다. 병두를 호젓한 강가로 유인한 부하는 칼로 병두를 찌른다. 병두는 이렇게 죽어가면서 조폭 생활과도 하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조폭의 실태를 리얼하게 그렸고, 특히 병두 역의 조인성의 연기는 진짜 악랄한 조폭 그대로이다. 보통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비록 악인이더라도 관객이 주인공에 동화되어 주인공 편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병두는 끝까지 사회적으로 응징되어야 할 악랄한 조폭이다. 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는다. 이는 나만의 생각일까? 그만큼 조인성의 조폭 연기는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