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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0. 2022

영화: 나는 너를 천사라 부른다

권력자의 정부(情婦) 정인숙의 짧은 생애

1970년 3월 말 한강 강변도로에서 젊은 여성이 오빠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괴한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강변3로 살인사건>이라 불렀다. 그런데 사건은 의문투성이였다. 살인 도구인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국가 정보기관이 경찰에 출동하여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리고 그 젊은 여성의 이름은 정인숙이라 알려졌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과 함께 아주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오리무중인 가운데 얼마 뒤 운전을 하던 정인숙의 오빠가 자신이 동생을 쏘아 죽였다고 자백하였다. 바로 <정인숙 살인사건>이다. 기자들은 그녀의 신원을 캐기 시작하였는데, 곧 그녀가 막강한 권력자의 정부(情夫)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기자들은 정인숙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짐작하였지만, 당시 언론의 통제로 그에 대한 기사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였다. 정인숙은 승일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승일이의 아버지는 당시 권력 실세였던 정일권 국무총리라 하기도 하고, 혹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었다. 나중에 정일권이 승일의 아버지로 판명난 것 같았은데, 그 외에도 그녀는 많은 권력실세들과 사귀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도 정인숙의 남자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정인숙 살해사건을 다룬 당시 신문기사

1970년 당시 가수 나훈아가 부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대유행을 하여 전국을 석권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많은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부르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곡이 갑자기 금지곡이 되어 대중들의 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명목은 왜색풍의 노래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대학생들이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가사를 “승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고관대작의 아들이라 말하겠어요”라는 식으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였다.   


영화 <나는 너를 천사라 부른다>는 정인숙의 일생을 그린 영화로서 1992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권력자들과 염문이 있었던 정인숙이라는 여성이 의문사로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정인숙은 방송작가와 잠시 동안의 동거 생활 후 그와 헤어지고 선운각이라는 고급 요정에서 일하게 된다. 이 당시는 “요정 정치”란 말이 있을 정도로 권력자와 고급관료들이 요정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기였다. 정인숙은 요정을 찾아오는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게 되며, 급기야 임신까지 하게 된다.

정인숙이 임신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권력자는 정인숙의 주변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녀가 가는 곳에는 경호원이 따라붙어 그녀가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못 하도록 한다. 그녀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셈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박정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인숙은 경호원의 눈을 피해 하고 싶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를 제지하는 경호원들에게 자꾸 그러면 아이에 대한 말을 터트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들이 권력자의 귀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정인숙을 국내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녀를 일본으로 보낸다. 주일본 한국대사관에서는 그녀를 VIP로서 깍듯이 모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은 철저히 제약된다. 답답한 일본 생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정인숙은 떼를 쓰듯 하여 다시 국내로 들어온다. 권력자는 점점 더 위험을 느낀다. 이 상태로서는 더 이상 정인숙의 입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그녀를 죽이기로 한다. 그리고 1970년 3월 말 새벽 강변3로(현재의 당인리 발전소 부근)에서 몇 명의 괴한이 그녀 오빠가 운전하던 차를 세워 뒷자리에 있던 그녀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이 사건은 그녀의 오빠가 자신이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함으로써 영원히 미궁에 묻혀버렸다. 그녀의 오빠는 이후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감형되어 출소되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하여 자신의 정부를 살해하고, 이를 은폐해버린 전형적인 권력형 스캔들 사건이었다.


이 영화에서 정인숙의 정부(情夫)가 누구인지, 그녀의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아마 이에 관한 공식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다만 어렴풋이 박정희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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