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Mar 07. 2021

영화9: 제9중대

할리우드 전쟁영화를 엉성하게 모방한 러시아 영화

<제9중대>는 아프간 전쟁을 배경으로 2005년에 제작된 러시아 영화로서, 원 제목은 “9-Ya Rota”, 영어 제목으로는 “The 9th Company”이다. 2005년 러시아 최고의 흥행작으로, 러시아 최초로 특정 분쟁사건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아프간 전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1978년 아프간에서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켜 친소 정권(親蘇政權)을 세우고 급진적인 근대화 개혁을 시도하였는데, 이에 저항하는 전통 무슬림들을 정부는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정치범 수천 명이 체포되고 2만 7천여 명이 처형당하는 등 탄압이 극심해지자 1979년부터 아프간 전역에서 반정부 반란이 일어났다. 이 결과 친소 정권은 일부 도시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토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했다. 아프간 정부의 요청을 받은 소련은 반군 진압의 명목으로 아프간을 침공하였다. 소련과 아프간 반군은 1979년 말부터 거의 9년 이상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 동원된 병력은 소련의 경우 11.5만 명이 상시 주둔하였으며, 아프간 측은 여러 정파의 병력을 모두 합하면 35.5만 명 정도였다. 이 전쟁에서 소련은 약 1만 5,500명 정도가 전사 혹은 실종되었으며, 약 5만 4천 명 정도가 부상당하였다. 아프간 측에서는 모두 11만 명 정도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150만 명 정도가 되는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여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피난하였다.  

아프간 전쟁 기록 사진들

반군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으리란 소련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길어졌으며, UN, 서구 제국, 이슬람권 국가들도 소련의 전쟁 개입을 격렬히 비판하면서 반군을 지원하였다. 반군들은 미국, 유럽, 이슬람권 국가, 중국, 파키스탄 등의 지원을 받아 소련에 강력히 저항하였으며, 소련은 마치 베트남에서의 미국처럼 점점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소련군은 마을과 사회시설의 파괴, 민간인 학살 등 크고 작은 무수히 많은 만행을 저질렀지만 반군의 저항은 점점 더 거세졌고, 결국은 1988-89년에 걸쳐 소련군은 아프간에서 전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중대> 영화는 아프간 전쟁에 투입될 소련 신병들의 병영 입소부터 시작한다. 다양한 직업, 여러 사회적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신병훈련소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부대장은 매우 완고한 인물로 훈련에 있어서 신병들을 가혹하게 다루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다. 말썽꾸러기 신병들은 병사로서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여러 사고도 치지만 훈련을 통해 점점 어엿한 전사로서 성장해나간다. 미국 전쟁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캐릭터이자 포맷이다. 이들은 몇 달간 훈련을 마친 후 아프간 전쟁에 투입된다. 


아프간에 투입된 병사들에게는 위험한 전장이 기다리고 있다. 아프간 반군들은 신출귀몰한 전투능력을 바탕으로 소련군들을 위협한다. 소수의 반군 병사들이 소총과 로켓포 정도의 무기로 소련군 탱크부대를 괴멸시키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9중대가 전투에 투입되지만, 인근 중대들은 반군과의 전투에서 패전을 거듭할 따름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9중대가 장악하고 있는 고지에 아프간 반군이 습격하면서 벌어지는 전투신이다. 9중대는 중기관포와 개인화기로 강력히 저항하지만 중대 규모 정도의 반군은 제대로 엄폐도 하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9중대의 진지에 육박해 들어온다. 9중대 병사들과 반군 간에 격렬한 육탄전이 벌어진다. 9중대는 전멸의 위기에서 지원군의 도움으로 겨우 고지를 지켜낸다. 


이 영화에 대해 <네이버 영화>는 “구 소련의 아프간 전쟁을 배경으로, 한 부대가 신병훈련소에서 전쟁터에 이르기까지 겪는 사건들을 그린 대작 전쟁영화로.... 제9중대는 마침내 비극적인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다.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러시아에서는 인기가 있었고, 네이버에게는 감동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간 전쟁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인식의 문제까지는 바라지 않겠다. 영화 스토리가 좀 어거지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영화 등에서 상대방을 아주 강하게 묘사하여야 강한 적을 물리친 주인공의 활약이 더욱 돋보인다는 점에서는 아군보다는 적군을 강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아프간 반군은 거의 불사신 군대 수준으로 그려진다. 21세기의 현대전에서 육탄전으로 전투의 승패가 결정 난다는 것도 너무 심하다. 그리고 서구 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포맷이 좀 엉성한 할리우드 오락 전쟁영화의 아류작이라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러시아에서 대성공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러시아의 문화 수준, 국민의식 수준을 말해주는 한 측면이라 이해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8: 8월의 광시곡(狂詩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