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상흔
일본 영화 <8월의 광시곡>을 감상했다. 1991년 개봉된 영화인데 나가사키(長崎) 시 근처의 시골마을을 무대로 원폭 투하로 남편과 형제, 자매들을 잃어버린 할머니와 그 손자들의 이야기이다. 쿠로자와 아키라(黒沢明) 감독의 영화로, 일본 배우들은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유일한 서양인 배우, 낯이 익다 했더니 리처드 기어이다.
할머니의 유일한 생존 형제인 오빠가 하와이에 살고 있어, 그 오빠가 조카 즉 할머니의 자식들을 미국에 초대한다. 오빠의 기족들은 모두 미국인으로서, 하와이에서 엄청나게 큰 농장을 경영하는 거부이다. 할머니와 손자들은 원폭 투하를 원망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데 미국에 다녀온 자식들은 자기 아버지와 삼촌들이 원폭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미국의 부자 친척들이 알고 기분을 상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렇지만 일본을 찾은 미국의 친척(리처드 기어), 즉 할머니의 조카는 원폭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미안해한다, 할머니는 이후에도 원폭 피폭의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는다.
8월이 되면 일본은 원폭 피폭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아진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 그런 분위기가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좀 과장되어 나타난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폭국으로서, 원폭에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 원폭 투하의 비인륜성 등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러나 원폭을 떨어뜨린 상대가 미국인지라 그것을 대놓고 말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그 원폭이 왜 투하되었는가에 대한 원인과 경위에 대한 것은 소홀이 다룬다는 것이다.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 그 결과로 희생된 다른 나라의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전쟁 중에 저지른 반인륜적인 잔학한 행위들, 그러한 것들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인들은 모두가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자신들이 그러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모두 자기네들과 같이 원폭희생자들에 대해 함께 슬퍼하는 것으로 안다. 과연 그럴까? 원폭 투하와 같은 비극적인 일은 앞으로 두 번 다시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왜 원폭 투하가 있었는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진심 어린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인들로서는 먼저 세계인으로부터 애도를 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관련하여 나가사키 시는 운이 나빴다고도 할 수 있다. 당초 원폭은 일본의 군수물자 생산공장이 밀집해있는 지금의 기타큐슈시의 야하타(八幡)에 투하될 예정이었다. 폭격기가 규슈 상공에 이르렀을 때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폭격기는 원폭 투하를 포기하고, 일본 상공을 빠져나오려고 하였다. 일본 상공을 빠져나올 무렵, 날씨가 개여 도시 하나가 발견되었다. 바로 나가사키 시이다. 폭격기에서 지휘부로 연락을 하였더니, 지휘부는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육안으로 확인된 도시에 원폭을 투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나가사키 시에 원폭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