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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14. 2022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독재에 대항하여 민중혁명을 이끄는 가이 포크스 가면의 남자

3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그린 영화들은 대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인간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영화들에서는 지구는 거의 사막화되어 있고, 소수의 인간들만이 살아남아 황폐해진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약탈자로 변한 인간들 간의 싸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통상적인 포맷에 비해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가 그리고 있는 3차 대전 이후의 인류의 미래는 다르다. 여기서는 전쟁의 결과 국제관계의 변화와 독재정권의 출현이라는 정치체제의 변화 속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과 독일의 합작으로 2006년에 제작되었다. 


2040년 세계 3차 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하고 패배한 미국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승전국인 영국도 국가체제가 완전히 변해버렸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던 영국이 완전 독재국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영국 정부 지도자는 국민들을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 등으로 철저히 구분하여 독재체제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정신집중 캠프’로 보내버렸다. 그곳에 끌려간 사람들은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으며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국 사회 곳곳에는 CCTV와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감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부터인가 영국 곳곳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그 대상은 정부기관 및 요인이다. 범인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V’라는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아무도 모르며, 그가 테러를 가한 사건 현장에 V라는 표시를 남겨두고 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이 포크스란 1965년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 지하에 화약을 설치하여 테러를 시도하였던 인물이다. 


어느 날 ‘이비’라는 소녀가 비밀경찰로부터 위험에 처하자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놀라운 검술로 비밀경찰들을 처치하고 그녀를 구해준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인용하여 독재국가로 바뀐 영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이 암울한 독재체제 속에서 시민들의 용기를 북돋아 자유를 찾으려 한다. 브이의 이러한 활동에 처음에는 좀 별난 사람의 돈키호테적인 행동이라 생각하던 시민들도 점점 생각을 바꾸게 된다. 브이는 독재정권의 본거지인 의사당을 폭파시킬 것이라고 예고한다. 


독재정권은 브이를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이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 자신들을 위협한다. 위협을 느낀 독재정권의 핵심부는 위기 앞에서 서로를 불신하며 분열상을 보인다. 급기야 독재정권의 일인자와 이인자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이인자가 일인자를 제거하는 사태에 이른다. 이러한 가운데 브이가 예고한 거사일이 점점 다가온다. 정권으로부터 직접 브이 체포를 명령받은 피티 경감은 처음에는 브이의 체포에 적극 나서지만 차츰 독재정권 하에 있는 암울한 영국의 상황에 브이의 체포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부딪힌 브이와 결투를 벌인 끝에 브이에게 중상을 입힌다. 

권력 심층부의 균열과 브이의 활약에 차츰 의식의 변화가 생긴다. 마침내 시민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피플 파워의 행렬이 노도와 같이 이어진다. 마치 우리나라의 촛불 혁명을 연상시킨다. 중상을 입은 브이는 이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이디는 브이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포기한다. 대신 브이의 가면과 복장을 대신 착용하고 시민들의 선봉에 선다. 마침내 노도와 같은 피플 파워는 독재정권을 타도에 나서고, 피플 파워는 승리한다. 


아주 괜찮은 영화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징성도 분명하지만, 오락성도 아주 뛰어나다. 브이의 활약을 보노라면 쾌걸 조로를 떠올린다. 2040년이라는 첨단화된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칼을 휘두르며 독재정권과 싸우는 모습은 미래 사회의 영웅으로서 쾌걸 조로를 시간 여행시킨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독재정권 아래서 숨도 쉬지 못하고 지내던 시민들이 점차 시민의식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리고 그렇게 철저하고 악독하던 독재정권의 핵심들은 일단 위기가 닥치자 스스로 지리멸렬하여 분열되고 붕괴되어 간다. 그런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비열함은 현실의 독재정권과 다름 아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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