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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14. 2022

영화: 14인의 여걸(十四女英豪)

나라를 위해 순국(殉國)한 남편을 대신하여 오랑캐와 맞선 여걸(女傑)들

중국 송나라 때 양(楊) 씨라는 충렬 가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안은 대대로 나라에 충절을 바쳐왔기 때문에 역대 황제들도 이 집안을 특별 대우하여 왔다. 전 황제는 현재의 황제가 잘못을 할 경우에는 그를 꾸짖을 힘까지 그 집안에 부여하였다고 한다. 


오랑캐(아마 거란인 것 같다)가 송에 침략해오자 양 씨 집안의 남자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끌고 나가 오랑캐와 맞섰다. 그러나 오랑캐의 계략에 빠져 군대는 전멸하고 만다. 그러자 양 씨 집안의 여자들이 집안 여자들로만 군대를 만들어 남편의 복수를 위해 전쟁에 나가고 결국은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 문화권에서는 소설이나 희곡, 드라마, 영화 등으로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인의 여걸>(十四女英豪)도 양 씨 집안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서, 1972년에 제작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젊었을 때 한 번 보았으며, 그 후에도 TV를 통해 몇 번 본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감상하였는데,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걸쳐 홍콩 여배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여배우는 리칭(李靑)이었다. 1960년 말 우리나라에서 홍콩의 멜로드라마인 영화 <스잔나>가 대히트를 쳤는데, 리칭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스잔나 역을 맡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홍콩 여배우로 등장하였다. 영화 <14인의 여걸>에서도 리칭이 주인공을 맡았다. 


때는 송나라 시절, 국경을 침범한 오랑캐를 퇴치하려 양 씨 가문의 남자들은 군대를 이끌고 오랑캐에 맞서 싸우려 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오랑캐의 계약에 말려들어 전원 전사하고 만다. 이 소식은 곧바로 여자들만 남아 있는 양 씨 집안으로 전해진다. 이제 여자들만 남은 양 씨 집안에서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가 집안의 복수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출진하여야 한다는 결정을 하고, 곧바로 양 씨 집안의 며느리와 딸들, 그리고 하녀들로 구성된 군대를 조직하여 전장에 나가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병부상서가 직접 찾아와 황제의 명이라며 출전을 말린다. 그러나 할머니는 양 씨 집안의 결정은 황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전장으로 나간다. 

오랑캐들도 양 씨 집안의 여자들이 출동했다는 소식을 알고 싸움에 대비한다. 양 씨 집안의 여군들과 오랑캐 군대는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타격을 입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오랑캐 부대의 본거지를 습격한 양 씨 집안의 여자들이 승리를 한다. 그녀들은 오랑캐의 군대를 박살내고 오랑캐의 수괴를 처단한 후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귀환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인간 다리이다. 오랑캐 본부를 습격하려는데 줄다리가 걸쳐 있는 깊은 골짜기가 나타난다. 부대의 반은 다리를 건너지만 줄다리는 불타 끊어진다. 그러자 골짜기 양쪽의 여군들이 서로의 어깨를 타고 올라 양쪽에서 손을 맞잡고 다리를 만들어 그 위로 남은 군사들이 건너간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서, 아마 이 영화를 감상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의 영화기술로는 획기적인 촬영 방식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 장면이 인상 깊게 소개되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제작된 것이다. 송나라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 하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무기가 변변찮았던 옛날에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체력이 전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체력이 남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게다가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을 여자들이 남자들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냥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사실인양 인식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송나라는 거란을 물리치기는커녕 거란과의 전쟁에서 연패하고, 결국은 거란을 형님의 나라로 모시고 조공까지 바치는 치욕을 맛보았다. 이 일은 5천 년 중국 역사상 가장 중국인의 가장 큰 치욕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치욕을 만회하는 정신승리를 위해 아마 이 이야기가 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가서 일본을 혼내주고 온다는 내용의 <임진록>이나,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 장수 용골대를 혼내준다는 내용의 <박 씨 부인전>과 같은 군담소설이 나온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별도로 치고 영화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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