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그늘에서 죽음을 헤쳐나가는 소년의 생존력
위기에 부딪혔을 때 어른과 아이 어느 쪽이 생존력이 강할까? 육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경험 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어른의 생존력이 강할 것이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어른의 경우 아이들에 비해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모욕감을 참아내기 힘들고, 또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어내는 데는 아이들에 비해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으므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어느 쪽이 생존력이 강할지는 알 수 없다.
영화 <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에서는 전쟁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아이의 생존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87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때는 1941년 중국과 일본 간에 전쟁이 격화될 무렵 이야기는 중국의 상하이에서 시작된다. 영국 소년 짐은 상하이에서 방직공장을 하는 부모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잘 살고 있다. 당시 중국의 일반 시민들은 가난에 찌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짐은 상하이의 외국인 거주지역에 위치한 넓고 화려한 대저택에서 부모와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일본군은 상하이 주변의 시골을 이미 점령한 상태이며, 상하이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짐은 열렬한 일본 찬양자이다. 그는 일본 공군의 전투기인 제로기에 흠뻑 빠져 있으며, 일본군의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아한다. 짐에게 있어서 일본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강한 군대이다. 짐은 매일 일본군 무기를 소재로 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일장기도 좋아하며, 일본도는 짐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다.
상하이에서 외국인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본군의 위협으로 매일매일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드디어 일본군이 상하이로 진입한다. 일본군이 행군해오자 외국인들도 공포에 빠져 상하이를 빠져나간다. 짐도 부모의 손을 잡고 피난민의 행렬에 들어섰으나, 그만 엄마의 손을 놓치고 혼자 상하이에 남겨지게 된다.
이때부터 짐의 생존투쟁이 시작된다. 상하이로 진입한 일본군은 외국인들을 모두 수용소로 보낸다. 짐은 몇 번은 수용소 행으로부터 도망치지만 결국은 잡혀 수용소로 끌려간다. 수용소 생활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수용소에 수용된 외국인 민간인들은 조그만 일에도 경비병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일본에 대한 짐의 동경은 그다지 사라지지 않는다.
짐은 수용소에서 눈치 빠르게 행동한다. 담배 암거래도 하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전달하면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물론 어른보다도 훨씬 더 수용소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먹는 것도 훨씬 더 잘 구한다. 일본인 경비병들의 비위를 건드려 경비병들이 화를 내면 어른들과는 달리 짐은 일본식으로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하며, 위기를 벗어난다. 어른들은 모욕감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지만, 짐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요령껏 행동한다.
전황은 점점 일본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일본의 패배로 곧 자신들이 해방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일본군을 동경하는 짐에게는 일본군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짐은 한 번은 생명을 건 모험도 한다. 밖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수용소 밖으로 흐르는 시궁창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감시병에게 걸리면 바로 목숨을 잃게 된다. 감시병에 의해 들킬 위기의 순간, 전에 철책을 사이에 두고 친해진 일본인 소년병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가미가제 특공대와 같은 일본군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지만, 결국은 일본은 패퇴하고 미군이 진주해온다. 미국의 손에 해방된 수용소 난민들은 모두 자유를 찾아 제갈길로 가고, 아이들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남겨진다. 어느 날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수용소로 찾아온다. 아이를 찾은 부모들은 아이와 눈물의 재회를 한다.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아 실망을 하고 있던 짐의 눈에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들어온다. 짐은 엄마 아빠에게 다가가지만 4년이란 세월 동안 훌쩍 커버린 짐을 엄마는 얼른 알아보지 못한다.
드디어 짐을 알아본 엄마는 눈물로 짐을 얼싸안으며 어느새 몸과 마음이 훌쩍 커버린 아들과의 재회를 기뻐한다.
이 영화는 제임스 G. 발라드란 작가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실제 자신이 경험한 일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헤쳐나가는 아이의 생존력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짐이 가졌던 일본군에 대한 동경이 그 후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