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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05. 2022

영화: 뽓뽀야(鉄道員, 철도원),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기차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대판 판타지

영화 <뽓뽀야>(鉄道員)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일본 영화로서 1999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제목을 한자로 ‘철도원’(鉄道員)이라 써놓고 읽을 때는 철도원의 일본식 발음인 ‘테츠도잉’이라 하지 않고 ‘뽓뽀야’라고 읽는다. ‘뽓뽀야’란 철도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별명 혹은 애칭이라 할 수 있다.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를 일본에서는 “뽓뽀”라 표현한 데서 온 말이다.


주인공인 사토 오토마츠(佐藤乙松)는 폐지 직전에 있는 로컬선인 호로마이센(幌舞線)의 종착역인 호로마이역(終着駅)의 역장이다. 철도 호로마이 선이나 호로마이 역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기차 노선과 역으로서, 짐작으로는 아마 삿뽀로의 오른쪽 어디쯤 있는 노선과 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토 오토마츠는 말이 호로마이 역의 역장이지, 실은 그 역에 근무하는 사람은 오토마츠 혼자뿐이다. 필자는 1994년 겨울에 약 3주 동안 홋카이도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홋카이도에는 직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도 제법 있다.


호로마이 역이 있는 이곳 마을은 겨울이 되면 온 천지가 눈이다. 그 속에서 오토마츠는 평생을 역무원으로서 일해왔다. 그는 오래전에 부인을 잃고 지금은 철도회사의 좁은 사택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 오토마츠는 곧 정년을 앞두고 있다. 함께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절친 스기우라 젠지(杉浦仙次)는 정년퇴직 후 철도회사에서 운영하는 리조트의 지배인으로 영전되어 갈 예정이다. 스기우라는 오토마츠에게 자기와 함께 리조트에서 일하자고 제안하지만 오토마츠는 거절한다.

사토 오토마츠는 평생을 철도원, 즉 뽓뽀야로서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너무나 성실한 사람이다. 젊어서 오토마츠는 시즈에(静枝)와 결혼을 하였다. 성실한 오토마츠는 결혼 후에도 자신의 직업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살아왔다. 오토마츠는 시즈에와 부부 금슬이 좋았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한참이 지나 드디어 시즈에는 예쁜 딸을 낳았다. 시즈에가 아이를 낳을 때도 오토마츠는 역의 일 때문에 아내를 찾지 못하였다.


오토마츠와 시즈에는 딸을 너무나 사랑하였다. 둘은 딸에게 유키코(雪子), 즉 눈처럼 예쁜 아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오토마츠 부부와 유키에는 너무나 행복하게 살아갔다. 유키코가 첫돌을 맞이 한 날 오토마츠는 인형을 선물하였고, 유키코는 한 시도 인형을 떼놓지 않고 안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키코가 아프기 시작했다. 시즈에가 아픈 유키코를 안고 오토마츠가 근무하는 역으로 찾아왔지만, 오토마츠는 일 때문에 아내 혼자 기차에 태워 도시의 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오토마츠가 마지막으로 본 유키코였다.


유키코가 병으로 죽었다. 시즈에는 죽은 유키코를 강보에 감싸고 다시 남편이 근무하는 역에 내렸다. 남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겠지만, 시즈에는 그저 남편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사토 부부는 그렇게 어여쁜 딸은 땅에 묻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시즈에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지만, 오토마츠는 일 때문에 제대로 아내를 찾아보지도 못하였다. 혼자 일하는 일인 역이라 오토가 자리를 비우면 역이 비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시즈에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오토마츠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그만 늦어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시즈에의 침대를 지키고 있던 스기우라 젠지와 그의 아내는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아내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느냐고 원망 어린 말을 한다. 오토마츠는 뽓뽀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시즈에를 묻는다. 이제 홀로 남은 오토마츠는 사택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큰 눈이 내린 어느 날 저녁, 오토마츠는 마지막 열차를 점검하면서 객실에서 작은 인형을 하나 발견한다. 조금 눈에 익은 듯한 인형이다. 오토마츠는 손님이 잊고 내린 물건이라 생각하고 역사 안에 인형을 가져다 놓는다. 날이 어두워지자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인형을 찾으러 온다. 오토마츠가 인형을 돌려주자 기쁜 얼굴로 돌아간다. 그런데 소녀의 얼굴이 어딘가 눈에 익은 것 같다.


조금 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역사에 찾아온다. 동생이 열차 안에 둔 인형을 찾으러 갔는데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오토마츠가 동생이 이미 인형을 가져갔다고 이야기 해주자 하면서 소녀는 붙임성 있게 오토마츠에게 재잘거린다. 오토마츠는 그런 소녀가 귀엽다. 소녀는 오토마츠와 한참을 함께 놀고 난 후 오토마츠의 뺨에 입을 맞춰주고는 돌아갔다. 이번에도 소녀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은 듯한 느낌이다.

조금 있다고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찾아온다. 자기 동생이 역으로 간다고 하곤 돌아오지 않는데,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오토마츠는 지금까지 자기와 같이 있다가 조금 전에 돌아갔다고 말해준다. 소녀는 자신은 근처에 있는 절의 주지 스님의 손녀인데 할아버지를 뵈러 왔다고 하며, 역사 안을 둘러본다. 역사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오토마츠가 모아둔 열차 번호판이라든가 깃발 등을 둘러보면서 즐겁게 재잘거린다. 그런 소녀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다. 소녀는 오토마츠에게 찌개도 만들어준다. 너무나 감격한 오토마츠는 이젠 죽어도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마침 절의 주지 스님이었다. 오토마츠는 주지 스님에게 지금 손녀가 이곳에 있다고 말해주니, 주지 스님은 자기 손녀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오토마츠는 놀란다. 그는 다시 소녀를 쳐다보니 역시 본 듯한 얼굴이다. 그는 드디어 확신감이 든다.

“유끼코(雪子)니?”

하고 물으니 사토 유키코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죽은 딸 유키코가 유령이 되어 17년 동안 성장해 간 모습을 보여주려 나타난 것이다. 인형도 역시 옛날 오토마츠가 딸에게 사준 그 인형이 틀림없었다. 강하게 끌어안는 오토마츠에게 유키코는 웃음을 지으며 가슴에 안긴다. 그리고는 유키코는 오토마츠를 남겨두고 조용히 사라졌다. 역무원 일지에는 “이상 없음” 이라는 문자만이 남겨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차 승무원이 역의 홈에서 차갑게 된 오토마츠의 유해가 눈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한 이야기다. 그런데 직업에 충실하느라 딸과 아내의 마지막마저 제대로 살피지 못한 오토마츠의 삶의 방식에는 도저히 동의하지 못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저런 모습이 과거의 일본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충성도로서 높이 평가받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삶의 방식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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