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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29. 2022

영화: 일본의 가장 긴 하루–운명의 8월 15일>

무조건 항복 전날 밤 궁정쿠데타 미수 사건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최종 발

1941년 말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초반에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의 패전을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한 후 과달콰날 전투를 분기점으로 태평양 각 섬에서 미군의 공격을 받아 패전을 거듭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패전이 연속되는 가운데서도 일본은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1944년에는 사이판과 괌이 함락되고 일본 본토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되었으며, 1945년에 들어서는 일본 영토인 유황도(硫黃島,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마저도 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일본은 자폭 공격인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낸다는지, 또 각 부대에 죽음으로써 적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려보내며 마지막 발악을 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또 한 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두 방의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혹한 피해는 더 이상 일본으로 하여금 저항할 힘을 잃게 하였다. 이로부터 일본은 급속히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포츠담 선언은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 주석이 포츠담 회의 도중에 발표한 것으로서,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이다. 포츠담 선언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자들을 권력으로부터 영원히 제거하여야 한다.

- 이 목적을 위해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때까지 연합군은 일본 내의 특정 지역을 점령할 것이다. 

- 카이로 선언의 요구 조건(일본이 한국, 대만 등 점령지들로부터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철저히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와 시고쿠 및 부속 도서로 제한한다. 

- 일본군은 완전히 무장해제된 후 집으로 돌아간다. 

- 일본 민족은 노예가 되거나 일본이 멸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엄격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  

- 일본은 전쟁을 위해 재무장할 수 있는 산업을 제외하고는 경제와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 

- 연합국 점령군은 이상의 목표를 완수하고, 일본에 책임 있는 정부가 수립되는 즉시 철수한다. 

-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적절하고 성의 있는 보장을 하여야 한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45년 8월 14일 수상이 주제 하는 각료회의에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할 것을 결정하고, 다음날 쇼와 천황으로 하여금 이 항복문을 읽어 무조건 항복을 공식 선언하기로 하였다. 이에 대해 군부에서는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고, 심지어는 이에 반대하는 쿠데타 소동도 있었다. 

영화 <일본의 가장 긴 하루 – 운명의 8월 15일>(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運命の八月十五日)은 1945년 8월 14일의 각료회의부터 다음날인 8월 15일 정오 쇼와 천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기까지의 24시간을 그린 다큐멘터리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67년과 2015년 2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는데,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1967년 제작 영화이다. 


1945년 8월 14일 정오 무렵, 일본 수상이 주재하는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포츠담 회담의 수락(=무조건 항복)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다음날 천황으로 하여금 항복 연설을 하도록 결정한다. 육군대신이 며칠만 여유를 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내각은 즉시 다음날 천황이 국민들을 향해 읽을 연설문 작성에 들어간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군 소장파 장교들은 극렬히 반대한다. 그들은 아직도 온 군과 국민이 힘을 합쳐 싸우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도저히 안되면 전 군과 국민이 "옥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황궁 수비대와 손을 잡고 천황을 자신들이 "보호"하려 한다. 동경에서 서쪽으로 100킬로 정도 떨어진 아쯔기 공군기지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출동 기지이다. 그 부대의 지휘관은 다음날 항복 선언이 있을 줄 알면서도 가미카제 특공대를 출동시킨다. 또 그 부대의 장교는 학도 의용군을 끌고 항복을 주장하는 대신들을 모두 죽이고 황궁을 접수하겠다고 출동한다. 

황궁 수비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소장파 장교들이 그들을 제지하는 수비대장을 살해하고 황궁을 접수하였다. 소위 궁성 사건(宮城事件)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다음날 예정된 천황의 무조건 항복 연설을 막으려고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서, 이들은 근위 제1사단의 사단장을 살해하고 사단장 명령을 위조하여 2개 연대를 이끌고 황궁을 점령하였다. 


각료들이 내각에서 작성한 항복 연설문을 가지고 황궁으로 들어왔다. 이미 황궁을 장악한 근위대는 각료들이 가져온 항복 연설문을 찾아 폐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각료들은 그들로부터 항복 연설문을 지키기 위해 황궁 시종장의 도움을 받는다. 그날 밤 황궁 수비대가 항복 연설문을 찾기 위해 황궁 전체를 샅샅이 뒤지지만 결국 찾는 데는 실패한다. 


자정이 넘어 아쯔기 부대를 출발한 학도의용군이 각료들의 집을 습격하여 기관포로 난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각료들은 집을 비워 화를 면한다. 새벽이 되면서 소장파 장교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군부 간부들이 설득에 나서면서, 황궁수비대와 아쯔기 공군기지 의용군은 반란을 포기하고 해산한다.


그리고 그날 낮 쇼와 천황이 포츠담 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연설을 함으로써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결정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아집에 눈먼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극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군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 채 허황된 소리를 지껄인다.


무조건 항복은 절대 안 되며 몇 가지 조건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넘,

정신력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넘, 

적이 상륙하면 전 국민 일체가 되어 싸우고 모두가 옥쇄하자는 넘,

그 와중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를 출동시키는 넘, 

가미카제 특공대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면서 비장한 목소리로 천황과 조국을 위해 산화하겠다는 넘,

그 광경을 보면서 열렬히 손뼉 치며 열광하는 넘


그러나 그날 낮 천황의 항복문이 발표된 이후에는 이에 저항하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항복 전날까지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자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미군은 이오시마 전투나 오키나와 전투에서 맞이한 그 악귀 같은 일본군을 생각하고는 일본 본토 상륙 후 일본군의 저항으로 막대한 희생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한 후 단 한 사람의 저항자도 만나지 못했다. 모두들 너무나 온순하고 고분고분했다.


일본 군부의 최고 통수기구인 대본영은 전쟁의 막바지까지 자국 국민과 병사들에게 옥쇄를 강요했다. 그들은 군대나 국민들에게 포로가 되기보다는 자살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막상 대본영 간부들 중에는 항복한 후 자살한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원래 악독하고 포악한 자일수록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비굴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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