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로부터 시작된 에도(江戸) 시대의 일본은 전형적인 봉건국가였다. 전국을 통치하는 막부(幕府)가 있고, 그 아래 약 300명에 이르는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를 다스렸다. 이들 하나하나의 영주들은 하나의 국가라 하여도 좋았다. 막부와 영주들은 자신들이 소유하는 영지(藩)에서 나는 산출물을 토대로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였다. 영주들은 막부에 대해 세금을 바칠 의무조차 없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비로소 통일국가가 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1871년 폐번치현(廃藩置県) 조치를 취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영주들이 다스려왔던 번을 폐지하고 지방 통치를 중앙 정부의 부와 현으로 일원화하는 행정개혁이었다. 이 조치는 일본의 정치 및 행정 체제에 일대 변환을 가져왔다. 에도 시대 각 번은 일종의 독립국가였다. 번의 통치자인 영주는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인력, 즉 사무라이를 스스로 선발하였다. 이들 사무라이는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대대손손 세습하면서 관리로서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번을 해체하고 중앙정부 직속의 현을 설치하였으므로, 이제 관리를 뽑는 것도 중앙정부의 일이다. 대대손손 관료라는 직업에 종사하였던 무사들은 이제 직장을 잃게 되었다. 고위 무사들은 여전히 번 설치 후에도 관리로서 일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하급 사무라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은 당장 실업자가 될 처지에 몰렸다. 사무라이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현실 생활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관리로서의 일에서 잘려 나가는 순간 그들이 먹고 살 직업은 아무것도 없다.
메이지 정부는 이러한 사무라이들에게 홋카이도 개척을 적극 권유하였다. 일본을 구성하는 4대 섬 가운데 가장 북방에 있는 홋카이도(北海道)는 그때까지는 사실상 일본의 영토라고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일본의 영토였지만, 추운 그곳에서 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버려진 땅이었다. 홋카이도 원주민인 소수의 아이누 족들이 수렵생활을 하면서 살던 곳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개척을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채택하였다.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본토로부터 사람들이 이곳을 가야 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개척사(開拓使) 등 관청을 새로이 만들었다.
영화 <북의 제로년>(北の零年)은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홋카이도 개척에 참여한 사무라이의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서 2004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이와지(淡路) 섬의 일부를 영지로 하고 있는 이나다(稲田) 가문에 대해 영주 및 그 아래 사무라이들에게 홋카이도로 이주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와지 섬은 오사카 남동쪽에 있는 기다란 모습의 섬으로서, 위도상으로는 우리나라 제주도보다도 훨씬 남쪽에 있는 섬이다. 이 명령에 따라 이나다 가문에 소속된 사무라이 및 그 가족 546명이 선발대로서 배를 타고 홋카이도로 향한다.
약 반 달 간의 항해 끝에 이들은 홋카이도의 남단 시즈나이에 상륙하였다. 이들은 가로(家老) 호리베 가베에(堀部賀兵衛)와 가신(家臣) 코마츠하라 히데아키(小松原英明)를 중심으로 이 미개척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상과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가로란 국가와 비교한다면 장관급 이상의 높은 관리를 말한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그들 앞에 닥친다.
논을 만들었지만 추운 날씨로 인해 벼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고, 또 그들 뒤를 따라오기로 하였던 제2차 이주단을 태운 배가 난파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더 이상의 사람이 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하늘과 같이 모셔왔던 영주가 이곳에 도착하였건만, 그는 홋카이도 이주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선언을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이제 선발대로 도착한 사람들은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이다. 게다가 메이지 신정부는 폐번치현 조치에 의해 그들이 지금까지 개척해왔던 땅이 메이지 정부의 관할이 되었다는 통고를 해온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히데아키를 비롯한 선발대는 스스로의 상투를 자르고 신정부에 의지 않겠다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히데아키는 아내인 시노(志乃)와 딸 다에(多恵)를 남겨두고 시즈나이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볍씨를 구하러 삿포로의 농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곧 돌아와야 할 히데아키는 반년이 넘어도 돌아올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심각한 식량부족에 시달린다. 게다가 사람들은 볍씨를 구하겠다고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히데아키에 대한 원망으로 시노와 다에를 차갑게 대한다. 시노는 딸과 함께 남편을 찾으러 나서지만 폭설 속에서 조난당하여 동사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아이누 족과 함께 사는 수수께끼의 남자 아시리카와 목축 지도자인 단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다.
딸과 함께 새로운 땅에 정착하게 된 시노와 다에는 단의 권유로 목장을 경영한다. 5년 후 시노는 많은 말을 키우는 목장주로 성장하였다. 옛날 함께 홋카이도로 이주해왔던 가신들은 사기꾼 같은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쥔 악덕 상인 도나가 쿠라조(戸長倉蔵) 아래서 일하는 하급 공무원이 되었다.
어느 날 히데아키가 개척사(開拓使)의 관리로서 이 마을을 찾아온다. 개척사란 홋카이도를 관할하는 최고 관청이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전쟁을 위하여 말을 징발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왜 그동안 소식이 없었느냐고 묻는 시노에게 히데하키는 5년 전 삿포로에서 병에 걸려 쓰러졌는데, 생명을 구해준 사람과 재혼하여 지금은 미하라(三原)라는 성으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5년 만에 만난 남편의 배반에 동요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시노는 히데아키의 처지를 생각하여 국가에 말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그 순간 축사에 갇혀있던 말들이 뛰쳐나와 초원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시리카가 말들을 풀어놓아 버린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아시리카는 하코다테 전쟁(箱館戦争)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하코다테 전쟁이란 1868-69년 사이에 벌어진 정부군과 막부 군의 최후의 전투이다. 이 시기 거대한 메뚜기 떼가 이곳을 습격하여 벼가 전멸하였는데, 그 위에 말까지 정부에 바쳤다가는 주민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된다.
농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이들의 기백에 눌린 히데하키는 함께 온 군대에게 즉시 철수를 명령한다. 시노를 비롯한 주민들은 다시 희망을 품고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착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