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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14. 2022

인도차이나 3국 여행(D+20)

(2022-11-05) 라오스의 고도(古都) 루앙프라방으로

방비엥은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는다면 하루 관광으로 충분할 것 같다. 조그만 관광지가 이곳저곳 흩어져 있어 툭툭이를 하루 대절하거나 현지 여행사 투어를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중요 관광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작은 관광지라 오래 머물 일도 없다.


어제 하루 종일 툭툭이에 시달린 데다 15,000보쯤 걸어 꽤 피곤하다. 호텔에 부탁해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는데, 기차 시간이 오후 4시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 호텔에서 딩굴딩굴하면서 피로나 풀어야겠다. 호텔 직원이 체크아웃 시간에 신경 쓰지 말고 룸을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하라고 한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신진서와 김명훈 사이에 벌어지는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준결승전을 감상하였다. 김명훈이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오히려 김영훈이 우세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게 잘 나가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김명훈이 무너지고 만다. 초일류 기사와 그 이하의 기사들 간의 시합을 보면 항상 이러한 경우가 많다. 잘 가고 있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벽을 넘지 못한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기대했는데, 아깝다.


51. 기차로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


오후 3시 조금 못 미쳐 방비엥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벌판에 갑자기 크고 좋은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방비엥 기차역이다. 이 건물은 라오스에 와서 본 건물 중에 가장 좋은 건물이다. 거의 서울역만 한 것 같다. 사람들이 역사 앞 땡볕 아래 30미터 정도 줄을 서있다. 줄 제일 끝에 자리를 잡았으나 줄은 꼼짝도 않는다. 무슨 줄인가 해서 맨 앞으로 가보니 표를 사는 줄이다. 티켓 창구가 서너 개 정도 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표를 끊는데 하세월이다. 우리는 이미 표가 있다고 하니 역사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기차를 타려면 여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짐 검사도 한다. 과일 깎는 칼을 빼앗겨 버렸다. 이 철도는 중국이 건설해 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스템이 중국과 흡사하다. 승차 시 여권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짐 검사를 하는 것이나 모두 중국 스타일이다. 이 철도는 향후 중국 내륙 철도와 연결된다고 한다. 이걸 두고 우리나라 어떤 평론가가 중국이 라오스를 집어삼키려는 의도라고 흥분하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소리를 하려거든 우리도 뭣 좀 해주고서나 그런 소리를 해라...

방비엥 기차역 건물
기차역 부속 건물
대합실 풍경

역 안으로 들어가니 대합실이 무척 넓다. 그 넓은 대합실에 사람이라곤 우리 부부밖에 없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표를 산다고 역사 밖 뙤약볕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에어컨이 나와 시원한 넓은 역사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합실에는 몇백 석은 되어 보이는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제일 앞 좌석열에 <승려좌석>(僧侶座席)이라고 한자로 써놓은 것이 이채롭다. 


기차 좌석은 일반석, 이등석, 일등석, 비즈니스석 등 여러 계층이 있은데, 우린 아래서 두 번째인 2등석 표를 끊었다. 루앙프라방까지 약 12만 킵, 우리 돈으로 11,000원 정도이다. 며칠 전 라오스 기차에 대한 탑승 소감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하나를 찾았는데 그 글에서는 형편없다고 악평을 하고 있다. 나도 궁금했다. 콩나물시루같이 아귀다툼을 해야 할 정도일까, 아니면 그런대로 쾌적한 환경일까? 반반으로 기대되었다. 라오스의 다른 교통 상황을 감안한다면 전자 같기도 하고, 현대의 발전된 기술로 건설한 철도이니 안락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플랫폼
날렵한 모습의 열차

기차는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라오스 기차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뒤떨어졌다"라 할 수 있다. 객차는 아주 쾌적하다. 깨끗하고 온도도 적절히 조절된다. 차량 내부는 우리의 KTX에 뒤지지 않는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보다는 훨씬 좋다. 좌석은 한 열에 5석인데, 크게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KTX 일반석과 비교한다면 좌석 폭은 아주 조금 좁은 정도이다. 앞 좌석과의 간격도 넉넉한 편이다. 라오스 열차에 대해 혹평을 한 사람도 2등석을 탔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런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전에는 열차 편이 하루에 한 편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네댓 편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런 좋은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는 현격히 뒤처져있다. 차표 예매는 역에 가서 직접 하여야 하며, 예매표를 판매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고 한다. 매표창구 숫자도 적어 겨우 백여 명의 사람들이 표를 끊으로 왔는데도 승객들을 오랜 시간 땡볕 아래에 세워두고 있다. 어떤 객차는 텅 비어있는데, 또 어떤 객차는 콩나물시루같이 승객을 꽉꽉 채우고 있다. 내가 탄 객차는 반 쪽에는 빈 좌석 하나 없이 승객을 꽉꽉 채웠지만 나머지 반은 텅 비었다. 나는 기차를 탄 후 내 자리를 떠나 텅텅 빈 쪽에 앉아 편하게 여행하였다. 

열차 안 풍경- 반은 꽉 차고, 반은 빈좌석

기차는 어주 매끄럽게 달린다 덜컹거림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창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절경이다. 산은 산대로 절경이고, 물은 물대로 절경이다. 그런 산과 물이 어울려 또 다른 절경을 만들어낸다. 한 구비가 돌아가면 새로운 절경이 펼쳐진다. 방비엥의 경치는 여기에 댈 것이 못된다. 어쉬운 점은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열차 구간 중 거의 반 이상이 터널 구간이라 절경을 감상할랴치면 열차가 터널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기차는 한 시간이 채 못되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 역사 건물도 훌륭했다. 기차는 편하고 좋았지만, 절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7~8시간 걸려 차를 타고 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밖 풍경

기차역은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 또 툭툭이나 택시와 요금 흥정을 해야 하나 생각하니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역 광장 아래로 내려가니 1인당 35,000낍을 받고 도심으로 데려다주는 밴들이 대기해있다. 밴은 호텔 바로 앞에 내려준다. 역에서 도심까지는 약 12킬로 정도인데 덕분에 편히  왔다.

루앙프라방 기차역


52. 루앙프라방 야시장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옛 수도로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장을 풀고 시내로 산책을 나갔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차분하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질서도 잘 지켜지는 편이다. 알본의 교토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일찍 잠드는 듯 어두워지고 있는데, 한쪽에서 밝은 조명이 비친다. 야시장이다. 넓은 야시장 터 중앙 앞쪽에는 큰 무대가 있고, 대형 화면이 걸려있다. 가장자리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빙 둘러 있고, 가운데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다. 손님들이 가게에서 음식을 사서 가운데 좌석에서 먹는 시스템이다. 이곳은 지금까지 가보았던 다른 도시의 야시장과는 달리 깨끗하고 이용이 편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넓은 음식 야시장은 외국 관광객으로 크게 붐비고 있다. 이곳에서는 방비엥에서 그렇게 많이 보였던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수 없었다. 

무엇을 먹을까 음식 가게들을 둘러보던 중 떡볶이를 파는 중년의 한국 남자가 보였다. 아내인듯한 라오스 여자와 딸이라고 생각되는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다. 떡볶이 철판 위에 떡을 산처럼 풀어놓는다. 저걸 언제 다 팔려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먹을만한 적당한 가게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가게들을 한 바퀴쯤 돌고 새로 그 떡볶이 가게 앞을 지나자니 그렇게 수북하게 쌓여있던 떡볶이가 벌써 다 팔린 것 같다.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다. 쌀국수에 닭 바비큐와 라오 비어 큰 병 한 병으로 저녁을 마쳤다. 


야시장을 나와 2~300미터쯤 걸으니 메콩강이 나온다. 다른 도시에서는 메콩강 주위가 불빛으로 휘황찬란한데, 이곳은 별다른 유흥시설이 없는 듯 어둠에 갇혀있다. 아주 깜깜하다. 강가에 특별한 시설들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메콩강의 시원한 밤바람을 맞다가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까지 1킬로 정도로 딱 걷기 좋은 거리이다. 

루앙프라방 메콩강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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