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손에 쥐며 살아왔다. 노력에 비해 크고 값진 결과물을 얻는 게 익숙한 삶이었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는 것도 딱히 없었다. 간절해지기도 전에 내 안으로 굴러들어 온 갖가지 행운 덕분이었다. 그렇게 순탄한 인생이었다.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 ‘글’이라는 산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학창 시절, 글쓰기는 나에게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쓰기만 하면 상을 받았고 학교 신문에도 여러 번 실렸다. 나에게 읽고 쓰는 건 하루 세 끼 식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그 일상을 그저 살아내기만 해도 칭찬이 뒤따라왔다. 글쓰기 덕분에 성공의 단물을 맛봤고 칭찬의 샘은 마르지 않았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차고 넘치게 채워졌다.
그렇게 채워진 샘은 사회에 나와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에 지쳤고 아슬아슬한 우위를 지키느라 조바심이 났다. 어지간해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돋보이려면 온갖 노력을 끌어모아야 했다. 주어진 수많은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나의 시간과 수고를 쪼개고 나를 갈아서 일과 가정의 안녕에 쏟아부었다.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과 커리어, 무탈한 일상은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러다 문득 텅 빈 나를 발견했다. 찰방 대던 샘물은 차오를 새도 없이 퍼서 쓰느라 바짝 말라있었다. 빈 껍데기만 남은 나를 채워야 했다. 내 안의 작은 아이는 어린 시절 앉았던 그 책상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 아이와 만나기 위해 ‘동화 쓰기’를 시작했다. 2012년 가을이었다.
2년 여를 꼬박 썼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으며 어린 나를 만났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마음의 구멍이 보였다. 그 공간을 채우려 글을 썼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말랑해졌다. 보드라워진 마음으로 쓴다고 멋진 글이 턱턱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힘에 이끌리듯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글벗들과 합평을 하고 글을 다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모전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꽤나 의기양양했던 첫 시도는 역시나 낙선이었다. 처음 도전이기도 했고 낙선의 영광(?)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서 허허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공모전 투고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힘들게 산에 올라 대답 없는 메아리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작은 성공의 기억은 흩어진 지 오래였고 낙심한 마음은 글의 통로를 막았다.
함께 했던 글벗들은 그사이 하나 둘 입상하고 등단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축하했으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텅 빈 노트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허했다.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고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이젠 글쓰기 때문에 마음에 골다공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공모전과 문예지를 기웃거렸지만 ‘실패’라고 적힌 성적표를 계속 받아야 했다.
이쯤 되자 ‘재능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노력 부족과 글쓰기에 쏟은 절대 시간 같은 것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재능’의 영역으로 탓을 돌리는 것이 가장 손쉽고 마음 편했다. 실패 앞에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시작이 미약했지만 창작의 끝은 그보다 더 미약했다. 이제 독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라 여겼다. 그러자 마음이 그렇게나 편해졌다. 작가를 응원하고 그들의 글을 누리는 것만으로 족하다 여겼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는 동안 크고 작은 인생의 부침을 겪었고 깊은 절망과 상실의 슬픔이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그때마다 내 안의 어떤 힘은 나를 ‘창작’의 세계로 자꾸만 밀고 갔다. 내 안의 나침반을 ‘창작’이란 N극에 맞춰 놓은 것 같았다. 글쓰기가 나의 북극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어느새 뭔가를 슬금슬금 끄적이고 있었다. 내 삶의 조각과 잃어버린 기억을 글로 남겼다. 나만의 세계를 오롯이 가꾸었다. 누군가의 인정도 칭찬도 필요하지 않은 세계지만 더 나은 문장을 위해 숱하게 번민하고 고민했다. 그렇게 한 줄 쓸 때마다 한 번씩 실패했다. 그럴싸한 문장이 나오지 않아서 실패하고 그 문장에 절망하면서 실패한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끊어내지 못해서 또 실패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어떤 실패는 때로 의도된 것이라고. 뻔히 알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기꺼이 실패에 몸을 담근다. 그렇게 어떤 실패는 나를 키운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나를 만든다. 기꺼운 마음으로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실패에 도전한다.